LH 신도시 투기, 원인과 해결책은
편집자주
국내외 주요 흐름과 이슈들을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깊이 있는(deep) 지식과 폭넓은(wide) 시각으로 분석하는 심층 리포트입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과 관련해 국민들이 분노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국민들은 투기하지 못하도록 그렇게 규제를 가했는데, 정작 모범이 되어야 할 집단은 투기를 통해 거액을 벌어들였으니 공분은 커질 수 밖에 없다. 평상시 투자를 꺼리는 맹지에, 그것도 거액의 대출을 받아 투기했다는 사실과 한 푼이라도 더 받아내기 위해 엄동설한에 묘목까지 심었다는 대목에선 할 말을 잊게 만든다. 이렇게 하여 상승한 개발원가는 결국 입주자들의 부담 증가로 연결된다.
신도시 때마다 반복되는 투기
과거 노태우 정부는 1기 신도시 계획을 발표한 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자, 합수부를 설치해 공직자 131명이 포함된 1만여 명을 부동산 투기로 적발했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2기 신도시 지역인 수도권과 충청권에서 투기가 극성을 부리자 '부동산 투기사범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합수부를 설치하여 27명의 공무원을 포함한 9,700명을 적발했다. 이제 3기 신도시에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
신도시 투기 재발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개발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심각한 주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80년 택지개발촉진법이라는 것을 만들게 된다. 이 법에 따르면 정부가 비밀리에 구역을 결정하고, 구역이 결정되면 민간의 토지를 수용하여 개발하게 된다. 개인의 소유 개념이 명확한 선진국뿐 아니라 한국의 주택정책을 벤치마킹하려는 개도국에서도 이것만큼은 도입할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제도다.
법 제정 당시에도 주민한테 의견을 묻지도 않고 구역을 결정하고 수용하는 것이 너무 가혹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도시개발을 하기 전 주민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나서서 결정한다. 우리처럼 주민들한테 묻지도 않고 결정하고 수용까지 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처음부터 주민들과 협의한다면 투기가 끼어들 여지도 상당히 줄어든다. 협의 과정에서 사업이 무산되는 사례도 나오고, 이 경우 미리 투기했다면 큰 손실을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관행과 이러한 정보를 소수만 알게 되는 비밀주의 때문에 지금의 LH 사태가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윤리성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이번 국민적 공분이 커진 데에는 일부 LH 직원들이 SNS에 올린 조롱성 글, 공공기관 직원의 윤리의식을 의심케 하는 글들이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금융업의 경우 일찍이 투자윤리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해 교육이나 사고방지 시스템을 고안해 놓았지만, 부동산은 그렇지 못했다. 부동산 분야는 국내에 투자윤리센터가 한 곳뿐이며, 선진국과 같은 시스템을 찾기 힘들다.
LH는 막강 영향력 지닌 거대 독점조직
LH는 2009년 10월 1일 한국토지공사(Land)와 대한주택공사(Housing)가 합쳐져 탄생했다.
1941년 설립된 조선주택영단은 1948년 대한주택영단으로, 1962년에는 대한주택공사로 바뀌었다. 주택공사는 마포아파트를 시작으로 한남외인·남산외인아파트, 한강맨션아파트, 반포·잠실·둔촌아파트와 광명시 철산아파트, 과천신도시, 서울의 개포·고덕아파트 단지, 군포 산본, 부천 중동, 상계, 광명 하안지구 등 수많은 주택을 건설한 실적이 있다. 임대아파트 건설 및 다가구 매입 임대 등을 포함하여 LH 통합 전까지 200만 호 이상의 주택을 공급했다.
1975년 설립된 토지금고는 1979년 한국토지개발공사로 바뀌고 1996년 한국토지공사로 재탄생했다. 토지공사는 분당 일산 판교 동탄 등 신도시와 6개의 혁신도시, 부산 인천 진해 등의 경제자유구역 조성, 개성공단 조성 등 남북경제협력사업, 산업단지 및 물류단지 조성, 도시재생사업 등 지역종합개발사업, 해외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해 왔다. 통합 당시까지 292개 택지 및 산업단지 등 총 356㎢의 개발을 완료하였고, 59개 지구 296㎢의 개발을 진행하였다.
이러한 초거대기업들이 합병하여 2009년 LH가 탄생할 당시 자산 규모 105조 원, 직원 수 7,300명을 넘어 삼성(175조 원)과 한국전력(117조 원)에 이어 단번에 3위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합병할 때 인력감축과 경영효율을 약속하였으나 작년 말 직원 수는 9,449명으로 늘어났고, 변창흠 국토부 장관이 언급하였듯이 우리나라 공공주택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독점적 지위 때문에 부작용도 우려되고 있다.
2019년 기준 자산과 부채는 각각 184조 원, 134조 원에 달하고 있으며,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20조5,297억 원, 2조7,827억 원을 기록하여, 1위 건설업체인 현대건설보다도 훨씬 크다. 보유한 주택 수도 120만 호가 넘어 세계적으로 주택 관련 기업 중 최대 수준이자 막강한 사회경제적 영향력을 지닌 회사인 셈이다.
이렇게 사업영역이 넓어지고 규모도 커짐에 따라 과거의 비밀주의적 사업방식이 더이상 통용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고, 거기에다 둔감해진 윤리의식이 지금의 사태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한국형 신도시를 해외에 적극적으로 수출하는 등 획기적 변화도 꾀하고 있다. 쿠웨이트와 인도 베트남 볼리비아 미얀마 케냐 탄자니아 등에서 신도시를 비롯한 각종 개발사업을 선도하고 있고, 해외로부터 지속적인 러브콜을 받고 있다.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이번 사태로 당장 2·4 부동산 대책이 계속 추진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역대급 물량이라는 83만 호의 공급계획에서 26만 호는 공공택지 방식으로 추진되므로 정부 의지만으로도 추진할 수 있겠지만, 여론이 악화되면 이 또한 어려워질 것이다. 그리고 57만여 호는 민간의 동의가 필수적인데 지금 상황을 감안하면 거의 힘들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러한 우려가 공급 차질로 시장에 반영되면 다시 가격 상승으로 연결될 수 있다.
이런 사태를 막으려면 공공이 하는 방식을 똑같이 민간에도 적용해, 공급시장에 민간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현재 민간에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처럼 규제만 많고 혜택은 별로 없다. 반면 공공은 용적률 상향, 용도 변경 등 혜택은 많으면서 조경 같은 의무는 적다. 만약 민간에도 공공처럼 혜택을 주면서 세입자 대책 같은 의무를 부여한다면, LH 사태로 인한 공급 차질을 민간이 어느 정도는 메워줄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너무 많은 해법이 감정적으로, 또 무차별적으로 쏟아져 혼란스럽기까지 한 상황이지만, 어쨌든 해결책의 기준은 정해놓아야 한다. 핵심은 국가에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LH를 해체해 통합 이전으로 돌리자' 'LH 독점을 깨기 위해 제2, 제3의 LH를 만들자'는 얘기가 나오지만 자칫 소탐대실이 될 수 있다.
2009년 LH 통합은 오랜 연구의 결과물이었고, 만약 지금 LH에서 특정 기능을 배제하거나 쪼개려고 한다면 예상 가능한 효과와 부작용부터 깊게 고민해야 한다. LH는 이미 3기 신도시뿐만 아니라 택지개발, 지역개발, 산단·공단개발, 도시재생, 해외 신도시 개발 등 너무나 많은 중대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웬만한 지방도시공사의 수십 배에 달하는 조직을 갑자기 해체할 수는 없다.
일각에선 택지개발을 민간으로 넘기자고 한다. 하지만 토지개발은 인허가 관련 특혜 소지가 많고 너무나 큰 단위의 이익이 발생하기 때문에 외국에서도 보통 토지는 공공의 영역, 건축은 민간의 영역으로 보고 있다. 공공이 토지를 소유하면서 민간에 적당히 수익률을 보장하면서 집을 짓게 하는 식이다.
핵심은 LH의 세계적 경쟁력과 노하우는 살리면서 건전한 기관으로 재정비하는 것이다. 우선은 현재 진행 중인 투기조사를 국민들이 납득할 정도로 철저히 해야 한다. 부패감시 시스템 강화, 임직원 윤리교육, 처벌조항 강화 등도 이뤄져야 한다. 더 크게는 비밀주의로 일관하는 개발방식을 개선해야 한다. 홧김에 조직 자체를 깨뜨리면 그 고통은 LH직원들이 아니라 국민 전체에게 돌아올 수 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부동산 전문가로 서울대에서 도시공학을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신도시 개발 등 각종 국책 사업과 PF 사업에 대한 자문 및 연구를 수행해왔다. 저서로 '부동산 왜? 버는 사람만 벌까' '대한민국 부동산 전쟁(공저)' 등이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