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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정치인은 입 다물자

입력
2021.03.17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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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코로나19예방접종센터가 설치된 울산대병원에서 병원 소속 의료진들이 백신을 맞고 있다. 울산대병원 제공

16일 코로나19예방접종센터가 설치된 울산대병원에서 병원 소속 의료진들이 백신을 맞고 있다. 울산대병원 제공


중요한 외부 미팅이 있는 날입니다. 집을 나서려는데, 하늘 빛이 심상치 않습니다. 스마트폰으로 날씨를 확인합니다. ‘강수 확률 50%’랍니다. 자동적으로 한마디 나옵니다. “우산을 가져가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가볍고 단단하며 3단으로 접히는 우산 하나, 가방에 넣어가면 그만인데 말입니다.

과학과 일상이 만나는 방식은 대개 이렇습니다. 과학은 절대 확답하지 않습니다. 이런 조건 속에서, 이런 가능성이, 이 정도 있다고만 말합니다. 한술 더 뜹니다. 그 뒤에다 ‘틀릴 수도 있다’ 토까지 달아둡니다.

사실 과학이 과학인 이유는 그 때문입니다. 100% 확실하다고 말하는 건 약 파는 사이비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먼 옛날 ‘나는 모른다는 걸 아니까 내가 제일 현명하다’ 했던 소크라테스 말씀이 지금까지 괜히 멋있는 말로 회자되는 게 아닙니다.

인간은 참 오묘한 존재라, 그래서 사이비에 더 이끌립니다. 현실이 갑갑할수록 확답받고 싶어지니까요. 확답을 요리조리 피하는 과학은 ‘얄미운 뺀질이’로 내쳐지기 십상입니다. 어려운 얘기 잔뜩 하더니 결론에 가서는 ‘글쎄, 될 수도, 안 될 수도’ 해버리니까요. 우린 결국 성질 버럭 냅니다. “아 됐고! 그래서, 된다는 거야! 안 된다는 거야!”

백신도 그렇습니다. 그 훌륭하다는 박사님들이 TV에 나와 백신병 흔들며 “효과 100%! 부작용 0%! 코로나19엔 이 백신이 딱 좋아~! 참 좋아~!” 해주면 후련하겠건만, 전문가들은 아무도 그러지 않습니다. 무슨 퍼센티지가 어떻고, 경우의 수가 어떻고, 전문가 심의가 어떻고, 설명이 깁니다. 그 유난을 떨더니 결국 ‘접종하러 가서도 의사하고 상담하세요’ 그럽니다.

얘기를 잠깐 돌리자면,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개인적으로 좀 놀라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됐습니다. 독감백신 효능이 고작 50% 수준이라네요. 어릴 적 ‘불주사’ 이후 백신을 접해본 적 없지만,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맞았습니다. 학부모들 사이에선 이게 꽤 민감한 문제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효능이 겨우 50%에 6개월 정도’란 사실을 알았다 해서 “이 따위 ‘물 백신’ 맞으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화낼 생각은 없습니다. 성인인 부모야 큰 문제 없겠지만, 백신 접종은 내 아이, 다른 집 아이에 대한 예의일 테니까요. 우산 하나 가방에 챙겨 넣는 심정으로요.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됐습니다. 효능이 90% 이상이라는 화이자·모더나 백신, 훌륭합니다. 하지만 효능이 70%대라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또한 훌륭합니다. 코로나19 같은 팬데믹 상황에선 개별 백신의 효능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빨리 맞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목표는 ‘집단면역’이기 때문입니다. K방역이 꽤 성공적이라 자연면역이 없으니 백신을 더 열심히 맞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팬데믹 자체가 미증유의 사태입니다. 전 세계가 실험 중입니다. 모두 불안하고, 누구도 답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백신만큼은 과학이 말하게 합시다. "그래서, 된다는 거야, 안 된다는 거야!" 소리 지르기 시작하면 확답을 꺼리는 과학의 목소리는 더 작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대선용 싸움박질할 거리들이야 이미 차고도 넘칩니다. 공포와 불안을 이용해 백신을 싸움할 거리로 만들기보다 과학이 제 목소리를 내도록 차분히 기다려줍시다. 백신에 대해서는, 그리고 11월 집단면역에 대해서는, ‘아빠의 무관심’ 같은 ‘정치인의 무관심’이 절실합니다. 굳이 입을 연다면 '그래서 얼마가 더 필요해?' 정도만 합시다.

조태성 정책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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