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번째 책 '안 느끼한 산문집' 서문에 이런 글을 적었다.
'주의 : 내 행복은 감염 위험이 높은 바이러스를 닮아서 이 책을 읽는 동안 마스크만 끼지 않는다면 당신은 높은 확률로 행복을 앓게 될 것이다. 정말이다. 내가 주문을 걸었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 코로나가 일상을 덮쳤다. 친구들은 앞다투어 나를 놀렸다.
"이슬아 네 행복 코로나야 혹시?"
그때는 이렇게 오랫동안 마스크를 끼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으므로 그저 기막힌 우연이구나 생각하며 웃어넘겼다.
며칠 전, 퇴근길에 소식이 끊겼던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우연히 읽은 책이 알고 보니 내 책이어서 반가운 마음에 연락했다며 늦었지만 출간 축하한다고 말했다. 이런저런 근황을 나누다가 그가 간호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생이 많다고 몸 상하지 않게 밥 잘 챙겨먹으라고 했더니 그는 이제 이 빡센 삶에 완전히 적응했다며 하하 웃었다. 그가 농담처럼 물었다.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르는데, 언니가 쓴 서문, 마스크만 끼지 않는다면 행복을 앓게 될 거라고 자신 있게 적은 그 문장이 혹시 후회되지 않느냐고. 오랜만에 받은 익숙한 질문에 나는 대답을 찾느라 잠시 골똘했다. 이 시기가 반드시 지나갈 거라고 믿는다고, 이 전의 삶을 되찾길 희망한다고 그러므로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코로나 최전선에 있는 그에게 믿음과 희망이란 단어가 너무 나이브하고 촌스럽게 들릴까봐 얼마간 망설였다. 그러나 그것 외에는 다른 말을 찾을 수 없어 결국 머릿속에 고인 말을 흘려보냈다. 우려와 달리 그도 같은 생각이라며 그때까지 우리 힘내자고, 마스크 벗으면 꼭 한 번 얼굴 보자고 씩씩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잘 지내자는, 그리고 잘 지내라는 인사를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 애와 짧은 통화를 마친 후 집을 향해 걷는데 적응했다고 믿었던 풍경들이 새삼 낯설었다. 누구든 잠시 쉬어가라고 만든 쉼터가 접근금지 테이프로 칭칭 감겨있는 모습, 한 집 걸러 한 집에 임대문의 현수막이 걸린 한산한 식당가. 엄마 손을 잡고 걷는 아이의 작은 얼굴을 반도 넘게 가린 캐릭터 마스크.
나는 그런 장면, 장면에 마음이 자꾸만 무거워져 고개를 푹 숙였다. 정말로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하면 어쩌지. 마스크 안 쪽에 엷게 맺힌 습기가 유난히 불쾌했다. 그래도 그렇게 말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 시기가 반드시 지나갈 거라고 믿는다고 그러기를 희망한다고. 나는 왔던 길을 되돌아 걸었다. 방금 전 보았던 장면 몇 개, 접근 금지 테이프로 휘휘 감긴 쉼터와 버스 정류장에 붙어있는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는 전단지 같은 것들을 찰칵찰칵 찍어서 후배에게 전송했다.
'이것 봐. 코로나가 끝나고 나면 나중엔 다 추억이겠다. 그치?'
이내 그에게 답장이 왔다.
'그래 지금 질리도록 봐두자 마스크 끼고 셀카 많이 찍어 놔ㅎㅎ'
핸드폰 액정에 마스크를 낀 내 얼굴이 비쳤다.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나왔다. 마스크가 없었더라면 이상한 사람처럼 보였겠지 생각하다가 아, 어쩌면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저 사람들도 마스크 속에서 나처럼 몰래 몰래 웃고 있는 건 아닐까, 꼭 그랬으면 좋겠다고 기분 좋은 상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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