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 그대로 방탄소년단은 전 세계 음악 시장을 집어삼켰다. 국제음반산업협회(IFPI)가 최근 발표한 리포트에서 방탄소년단은 2020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음반을 판 가수로 등극했다.
이들조차 심심찮게 겪는 일들이 있다. 2월 말 방탄소년단은 MTV Unplugged 무대에서 영국 밴드 콜드플레이의 'Fix You'라는 곡을 커버했다. 며칠 후 독일의 한 라디오 디제이는 이를 두고 ‘신성모독’이라 비난하면서 ‘빨리 백신이 나왔으면 하는 형편없는 바이러스’라고 방탄소년단을 비꼬았다. 심지어 ‘20년간 북한으로 휴가를 보내야 한다’는 등의 어처구니없는 혐오 발언이 그대로 방송으로 송출되었다.
아시아인에 대한 총격이나 폭행 사건이 매일 일어나는 요즘 저 정도의 발언이야 뭐 대수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상 속에서의 미세 차별은 사람들이 마음속에 품은 혐오를 손쉽게 밖으로 쏟아내게 해준다. 거기서 확인된 현실적 영향력은 실제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추진력이 되기도 한다. 정도의 차이일 뿐 이 또한 ‘증오 선동’인 것이다.
이런 위험성을 생각하면 이 사건은 개인의 말실수라고 관대하게 넘길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었다. 분노한 전 세계의 아미들은 방송사와 그 디제이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발표된 사과문은 피해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면서 자신은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는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진정한 사과도, 자신들의 어떤 행위가 인종차별적이었는지에 대한 인정도, 재발 방지 약속도 없었다. 마지못해 쓴 흔적이 역력한 전형적인 면피용 사과문은 분노에 기름만 끼얹었을 뿐이었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더 똑똑해지고 더 집요해진 대중은 분노의 항의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여성주의 저널 '일다'에 실린 기사 하나를 접했다. 잊고 있던 부끄러운 진실을 되새겨보게 하는 글이었다. “예전 일본이 한국을 식민 지배했던 방식과 현재 한국이 이주노동자를 대하는 방식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장은 우리 안의 인종차별을 통렬히 지적하고 있었다. 참담하고 부끄러웠다. 외국에서 벌어지는 아시안 혐오 범죄나 방탄소년단에 대한 혐오에 분노하고 있던 나는 너무 부끄러워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인종차별과 혐오는 다른 나라에서만 발생하고 우리나라에는 없는 줄 아는 한국인이 상당히 많지만, 우리나라 역시 전혀 예외가 아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제도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상황이 어떤 면에선 더욱 나쁘다. 한국 내의 인종문제는 그동안 마치 일부 나쁜 사람들에게 한정된 일인 것처럼 모두가 방관해 왔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독일 디제이 사건을 겪으면서 한국 아미들이 우리나라의 인종차별에 대해서도 반성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남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혐오에 맞서 싸우면서, 우리 안의 인종주의는 외면한다면 이건 두말 할 나위 없는 이중 잣대가 아닌가.
수년간 방탄소년단을 향한 혐오와 차별에 맞서 싸우면서, 아시아 바깥에서 동양인으로서 인종차별을 경험해 온 아미들은 물론이고, 아시아 안에서 살아온 이들도 차별받는 사람의 입장에 서고, 저항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덕질’은 의도치 않게 세상 공부가 된다. 나는 이렇게 함께 고민하고 싸우는 아미들이 더 많아지는 세상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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