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 새로 생겼다는 ‘더현대 서울’에 갔다. 현대백화점에서 우리나라에 없는 새로운 형태의 백화점이 될 것이라 호언한 곳이다. 거대한 타원형의 구조는 한가로운 크루즈선을 떠올리게 만들었고, 새소리가 나오게 구현해 놓은 실내 공원은 인공 테마파크 같았다. 이곳은 물건을 사기 위한 백화점이라기보다 문화와 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는 거대한 놀이동산이었다. 물론 그건 현대백화점이 정확히 의도한 바였을 것이다.
그 힙하고 현대적인 광경을 보는 일은 즐거워야 마땅하건만, 나는 어쩐지 멋진 마술쇼에 숨겨진 트릭이 못마땅한 관객처럼 눈을 흘기게 되었다. 이 불편함은 뭐지? 하나는 그곳에 지나치게 ‘모든 것’이 있었기에 느껴지는 당황스러움이었다. 39년 전통의 리치몬드 과자점, 76년 동안 운영한 태극당, 서촌의 통인스윗을 비롯해 지역에서 내로라하는 맛집뿐 아니라 여행지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지역의 음식점들(춘천 감자빵, 전주의 풍년제과)까지 여의도의 한 공간에 모여 있는 모습은 모든 걸 그악스럽게 움켜쥔 손, 치어까지 긁어모으는 저인망 어선을 떠올리게 했다. 무엇 때문에 봇짐을 동여매고, 기차를 타고 멀리 떠난단 말인가? 이 놀이공원에서 돈을 쓰면 되는데 말이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번 3월, 백화점과 아웃렛 매출은 코로나 이전 수준을 넘어섰다.
다른 하나는 취미를 ‘행하는 것’에서 ‘쇼핑하는 것’으로 치환하는 데서 오는 불편함이었다. 당신이 누릴 수 있는 모든 취미가 ‘살 수 있음’의 객관식 보기로 제안되는 데서 오는 당혹감. 더현대는 ‘쇼핑하는 곳’에서의 정체성을 넘어 ‘문화를 누리는 곳’이나 ‘취미를 즐기는 공간’으로서의 위치를 점했다. 기존 백화점도 문화센터운영이나 간헐적 특강으로 문화공간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져가려 했지만, 그 시도가 늘 성공적이었던 건 아니었다. 그러나 더현대는 MZ세대의 취향까지도 잡는데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살롱문화를 캐치해 심야살롱을 열고, 매거진B의 편집숍을 열고 아마존고를 들였다. 와인을 테이스팅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고, 카페에서는 커피 오마카세도 즐길 수 있다. 갤러리도 있고 시가가 전시된 숍도 있다. 부러 새로운 취미를 찾으러 멀리 떠날 필요가 있나? 동네의 작은 공방문을 두드리거나 지역의 커뮤니티를 찾을 필요가 있을까? 나른한 조명 아래 멋지게 반짝이는 취미를 ‘사기만’ 하면 되는데?
우리가 무엇을 즐기든 그 끝이 ‘소비’로 이어지는 것도 이미 오래된 일이다. 작은 것들이 큰 것으로 흡수되는 것, 지역의 것이 세계적인 것이 되는 것, 자본이 한 곳으로 몰리고, 소수가 많은 것을 가져가는 것은 시대의 흐름이다. 지역경제활성화, 정치적 소비 따위의 구호는 선거철에만 반짝 유용한 단어일지도 모른다. 나의 취향이라는 것이, 혹은 취미라는 것이 쇼핑을 선택한 후 누를 수 있는 ‘추가옵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인정해야 할 것만 같다. 그러니 내가 이 새로운 놀이공원에서 어떤 위협을 느끼는 것은 그들의 의도가 다른 기업과 달라서라기보다, 그들이 뛰어나게 잘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잘 전시된 취향 중 하나를 골라 나의 정체성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 거대한 기업이 지역의 작은 것들을 모두 포섭해서 번호로 치환해 진열해두는 것이 무섭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