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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역대 재·보궐선거 최고치인 20.54%의 사전투표율에 대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샤이 진보의 표를 끌어냈다' '분노한 정권 심판의 표'라며 제각각 유리한 해석을 했다. 사전투표에 젊은 층, 민주당 지지층이 많이 참여하는 경향은 지난해 21대 총선에서 뚜렷하게 나타나 개표 조작설을 부를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엔 국민의힘도 사전투표를 독려했고 젊은 층의 민주당 지지는 낮아진 터라 2, 3일 투표자들의 성향을 짐작하기 어렵다. 전문가들도 ‘어느 쪽에 유리한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 샤이 호명은 2016년 미국 대선의 ‘샤이 트럼프 현상’에서 대두됐다. 모든 여론조사와 언론이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승리를 예측했다가 반대 결과에 패닉했다. 여론조사에선 부끄러워 지지를 안 밝히고 투표장에선 표를 던진 샤이 트럼프 지지층이 오차를 만들었다고 해석했다. 국내에선 대통령 탄핵 후 2017년 대선과 2018년 지방선거에서 샤이 보수가 있다고 분석됐다. 대선 때 홍준표 국민의힘 후보 득표율은 마지막 여론조사보다 8%포인트나 높았는데 유독 차이가 큰 것이었다.
□ 샤이의 존재 자체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한 여론조사 업체 대표는 “샤이 보수·진보란 결국 여론조사의 실패를 변명하는 말일 뿐”이라며 “조사의 정확성을 높이는 방법을 마련하는 게 관건이다”라고 일축했다. 일리가 있는 것이 샤이 표 때문에 틀릴 수밖에 없는 여론조사라면 애초에 의미와 필요성이 의심스럽다. 2016년 미국 대선 때도 예측에 틀린 것은 기성 여론조사 업체들이었고, 구글 트렌드의 검색 키워드 분석과 소셜네트워크(SNS) 빅데이터 분석은 트럼프의 당선을 예상했다.
□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의 용산 참사 실언과 "측량 현장에 왔다"는 생태탕집 사장의 증언이 진보층의 막판 결집을 자극했을까.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박주민 민주당 의원 등 여권 인사들의 내로남불 전셋값 인상이 보수층을 사전투표장으로 불렀을까. 어떤 표심이 더 많이 움직였는지는 결국 투표함을 열어봐야 알 수 있다. 말할 수 있는 것은 한가지, 지지한다고 밝히는 게 부끄러워진 대상이 이제는 민주당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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