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어젠다기획부) 마이너리티팀 회의 때면 자주 한숨이 나온다. 중간착취 금지 법안을 제안하고 그 과정을 보도하고 있는데, 정부와 청와대가 별 의지가 없어 보여서다. 지난 1월 파견·용역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겪는 임금 중간착취 문제를 기획으로 내보내고는, 무려 20년이 넘은 이 오래되고 고달픈 문제가 개선되길 바라며 취재팀이 ‘입법 로비’를 시작했다. 몇 명의 의원들이 법안 발의까지 나서기로 했지만, 걱정이 많다. “권력자가 톱다운 방식으로 밀어붙여야 성과를 장담할 수 있는데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게 우리의 고민이다.
우리 부 기후대응팀도 비슷한 허탈함을 안고 있다. 과다한 플라스틱 사용과 같은 소비재 포장 문제를 분석하고 기업과 정부의 책임을 지적하는 ‘제로웨이스트 실험실’ 기획을 격주로 내보낸다. 취재할 때마다 정부의 기준이나 단속의 문제점이 눈에 띄어 기사로 지적하지만, 정부의 반응은 별로 없다. 기사 댓글에는 “환경부, 일 좀 해라!”라는 분노가 줄을 잇는데 말이다.
이 와중에 재·보궐선거를 치르고, 이름값 있는 정치인들이 뉴스를 채우는 걸 본다. 정치인은 어떤 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일 뿐인데, 어느 순간 특정 정치인 수호나 지지가 ‘목적’이 되어 제도를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걸 지겹도록 보아왔다. 문재인 정권도 목적과 수단이 뒤바뀔 때가 자주 있었다.
환멸의 이름들만 무성한 곳에서, 피로처럼 덮쳐오는 정치 혐오를 떨치기는 쉽지 않다. 한때 인기 높았던 의사이자 기업가 출신 정치인이 성소수자 혐오 발언으로 취약한 이들의 목숨을 위협하고, 한때 민주주의 쟁취에 몸 바쳤던 정치인들은 돌림노래처럼 성폭력 피해 여성을 2차 가해한다. 공정한 사회를 외치지만 자기 자식의 특혜는 옹호하며, 부동산 정책을 내놓는 와중에 그 정책의 취지를 비웃듯 이익을 챙긴다. 이 틈에 아이들의 무상급식을 반대했던 인물은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다시 서울시장이 됐다. 소모적인 말들과 퇴행들이 뉴스를 채우면서, 사람들의 관심도 ‘개선해야 할 문제’보다 ‘욕하고 싶은 인물’에게 쏠리고 있다.
이렇게 환멸의 이름들만 쥐어질 때면, 이름을 거둬내고 애초 그 이름들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목적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실망과 불안을 다독이는 것은, 당장 오늘의 숙제를 하고 구석의 먼지를 쓸어 내는 일이며, 누구라도 그걸 하면 된다.
조만간 국회에서 발의될 중간착취 금지 법안이 환경노동위원회를 뚫고 법제사법위원회를 뚫고 국회 본회의를 거쳐 세상에 나올 수 있을지, 지켜볼 생각이다. ‘걸출한 이름’에 기대지 않고, 정치적 이목도 받지 못하고 기득권의 이익과 관계없는 이 약자들을 위한 법안이 순항한다면 개인들에게 실망할지언정 시스템에 실망하지는 않을 것 같다.
플라스틱 문제도 그렇다. 한국이 1인당 포장 플라스틱 사용량 세계 2위인 이유가 있다. 환경부가 규칙으로 1cm 이상의 두꺼운 화장품 용기 등을 허용하고, 플라스틱 사용 기업들에 부과하는 너무 적은 부담금과 같은 문제들을 방치하고 있어서다. 정치라는 ‘수단’ 없이도 담당자들의 노력에 따라 개선할 수 있는 사안들이다.
할 일을 하는 데서 오는 이런 성취들을 간절히 보고 싶은 때다. ‘환멸의 정치’가 사회 자체의 퇴보가 아니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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