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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 대졸 종부세 납세자

입력
2021.04.26 04:30
수정
2021.04.26 21:08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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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은 대학생인가. 가방끈 긴 사람의 세계에선 그렇다. 국민은 유주택자인가. 가진 사람의 세계에선 그렇다. 종합부동산세 납세자가 국민의 다수인가. 많이 가진 사람의 세계에선 그렇다. 세계의 경계는 내 앎이 미치는 지점까지다. 성찰로 앎을 확장하지 않으면 세계는 자꾸 좁아지고 세계의 끝 너머는 끝내 하찮아진다.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결과는 청년은 누구인가를 다시 물었다. 청년 취재를 청년 당사자인 기자와 인턴기자들에게 맡겼다. 20대 11명의 인터뷰 요약본이 며칠 뒤 부장인 내 책상에 놓였다. "어어, 고졸은 없어?" "생각을 못 했어요." "……" "그런데 고졸을 어디서 만나죠?"

2010년 이후 대학 진학률이 매년 70% 안팎이었으니, 20대의 약 30%는 고졸이다. "30%는 사람도 아니니? 그래서 좋은 기자 되겠어?" 젠체하며 지적했지만, 뜨끔했다. 나 역시 오직 대졸들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 직계가족도, 친구도, 기자 동료도, 취재원도, 거의 다 대졸자다. 최근 석 달 사이 같이 밥 먹은 사람 중에 고졸자가 없는 곳이 나의 세계다.

최후의 공정이어야 할 공공의 세계에서도 청년의 기본값은 대학생이다. '청년' 정책이라며 정부가 대학 입학금을 없애기로 한 것, '청년' 맞춤형 재난지원금을 대학 장학금 명목으로 주는 추경안을 국회가 의결한 것, '청년'의 일생이 걸렸으니 대입 수능일까지 모두 조용히 살아달라는 호소가 관(官)의 이름으로 등등하게 울려 퍼진 것은 그래서다. 언론이 상정하는 청년의 공정 또한 대졸의 공정이어서 조국 사태 때 기자들은 으레 대학으로 달려갔다. 성찰 없는 유유상종은 종종 폭력이 된다.

부동산 민심에 데인 더불어민주당은 종부세 민심에 제일 먼저 머리를 숙였다. 종부세 때문에 골난 사람들의 말부터 경청했다. 종부세와 집값 안정의 인과관계를 찬찬히 따져 보지도 않은 채 종작없이 겁을 냈다. 지난주 내내 종부세 싸움이 벌어졌다. "덜 걷으라는 게 민심이다." "입 닥쳐. 그냥 걷어."

종부세 납부라는 이른바 국가의 징벌을 당하려면 1주택자 기준으로 집값이 전국 상위 3.7%에 들어야 한다. 시가 12억~15억 원이 경계선이다. 고졸 30%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종부세 납세자 3.7%는 '민주당 눈에 유난히 크게 보이는 사람들'이다.

민주당의 세계가 비싼 집 가진 사람들의 세계와 어느새 포개져서 그렇다. 국회의원, 관료, 기업인, 교수, 기자까지, 공론장 발언권을 독점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그 세계에선 '많이 가진 고통'을 서로 나눈다. 부동산 보유세 폭탄을 맞는 고통, 교육 특권을 대놓고 상속하지 못하는 고통,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치여 사는 고통. “집 가진 게 죄야? 유능한 부모 만난 게 죄야? 고귀하게 태어난 게 죄야?”

그 세계에 복속하는 정당이 두 개나 있을 필요는 없다. '못 가진 고통'을 대변하며 못 가진 사람의 세계에도 희망을 씨 뿌리는 정당, 종내엔 두 세계의 경계를 허무는 정당의 자리를 민주당마저 내버린다면, 세계사의 많은 선례처럼 극우와 포퓰리즘이 대한민국이라는 세계를 집어삼키고 말 것이다.

민주당이 때마다 기리는 초졸 무주택자 청년 전태일은 일기장에 썼다.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약점은 희망함이 적다는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을 희망하게 함'이 적어졌다는 것, 오늘날 민주당의 불길한 약점이다.

※칼럼 제목은 김연수 작가의 단편소설 '세계의 끝 여자친구'에서 따왔다.


최문선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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