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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올해 9월 총선을 끝으로 은퇴하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후임자 자리에 독일 녹색당의 40세 여성인 안나레나 배어복 후보가 급부상하고 있다. 최근 녹색당의 지지율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지난주 여론조사기관 포르자와 칸타르 조사에서 녹색당의 지지율(28%)은 모두 집권 기민ㆍ기사연합, 제1야당 사민당을 앞질렀다.
□ 2009년 총선에서 10.9% 득표율로 최고 득표를 한 것 말고는 총선마다 8~9%의 표를 얻어 고만고만한 군소정당으로 취급됐던 녹색당의 약진은 ‘환경보호’라는 당의 기본노선을 지키면서도 실용적 면모를 보여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냉전 시기 독일에 집중 배치된 나토군의 핵무기에 대한 반핵 운동 분위기 속에 1980년 창당한 녹색당은 초기에는 나토 탈퇴, 군비 축소, 대안 경제 등에 집중하는 이념정당 성격이 강했지만 이후 여러 차례의 연정 참가로 수권정당의 면모를 인정받았다. 원칙주의자와 현실주의자의 당내 노선 투쟁 끝에 중산층 지향의 ‘신 녹색당’ 노선을 채택하며 집권을 준비한 결과물이다. 18~24세 청년들의 전폭적 지지, 70대에 접어든 전통적 지지층인 ‘68세대’ 의 건재 등 세대를 아우르는 지지도 희망적이다.
□ 녹색당이 집권하더라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집권기에 훼손됐던 미국과 유럽 간 ‘대서양 동맹’의 회복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게 외신들의 분석이다. 녹색당은 지난해 말 유럽연합과 중국 간에 맺어진 포괄적 투자협정 체결에 반대했으며, 독일 내에서 화웨이의 5G 통신장비 사용 제한에도 찬성 입장이다. 녹색당으로서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을 공약하고 기후변화협약 복귀를 선언한 조 바이든 행정부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파트너다. 런던 정경대에서 국제법을 전공한 배어복 후보의 영어 구사는 원어민 수준이다.
□ 녹색당의 약진은 정파를 불문하고 독일이 수십 년간 추진한 친환경ㆍ탈원전 정책, 신재생에너지 산업의 성장 등도 그 배경이다. 탄소의존도가 지나치게 높고 전력을 외국에서 수입할 수도 없는 우리나라는 여러모로 상황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해도 독일 녹색당의 약진 소식은 녹색을 표방하는 친환경정당의 득표율이 1%에도 못 미치는 우리 현실을 씁쓸히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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