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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서울 강남구의 한 가상화폐 거래소는 계좌당 600만 원을 투자하면 6개월 후 배당금 명목으로 3배 수익을 보장한다고 약속했다. 여기에 새로운 투자자를 데려오면 한 명당 120만 원의 수당을 지급하고, 거래소에 새 가상화폐가 상장될 때마다 10만~20만 원의 자사 가상화폐를 나눠준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초기 투자 유치 후 6개월이 지나면서 투자금 반환이 늦어지자, 경찰이 수사에 나섰는데 피해자는 30대에서 70대까지 다양하며, 계좌에 입금된 금액만 2조4,000억 원에 달한다.
□ 지난달 가상화폐의 대표 격인 비트코인 가격이 7,000만 원을 돌파하는 등 2017년에 이어 2차 ‘코인 붐’이 일자, 사기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특정 쇼핑몰에서 물품을 구매하면 일정 금액을 가상화폐로 돌려주는데, 상장만 되면 가격이 수십 배로 뛸 것”이라는 유혹은 초보 수법이다. 더 큰 사기는 특정 가상화폐를 구매해 지정한 ‘전자지갑’에 넣어두기만 하면 약속한 수익을 되돌려주겠다는 ‘코인 스테이킹’으로, 앞의 가상화폐 거래소가 전형적이다.
□ 가상화폐 사기에서 빠지지 않는 수법이 바로 다단계 모집이다. 우선 투자자를 손쉽게 모으기 위해서다. 여기에 사기범이 초기 투자금으로 돌려막기를 하다 규모가 커진 후 갑자기 돈을 빼돌리고 잠적하면, 투자자는 피해자인 동시에 이후 투자자에게 가해자가 되면서 적극적으로 피해를 신고하기 어려워진다는 계산도 숨어있다. 또 투자자들 간 다툼이 커지면 정작 돈을 빼돌린 가해자 추적은 뒷전으로 밀려나는 경우도 생긴다.
□ 주목할 점은 대부분 사기 수법이 3년 전 코인 붐 때 그대로라는 것이다. 여전히 사기범은 쉽게 법망을 빠져나간다. 코인 사기가 가상화폐로 투자받고 수익금을 가상화폐로 돌려주는 것은 법정화폐를 받지 않으면 금융사기를 처벌하는 유사수신 행위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맹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가상화폐 법적 지위’라는 추상적 논쟁에 매달려, 코인 투자자들을 제도 보호권 밖에 방치하는 것을 더는 기다릴 여유가 없다. 이미 수백만 명에 달하며 거래 규모도 코스피와 코스닥을 합친 것만큼 성장한 가상화폐 시장은 이제 ‘가상 시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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