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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최근 수년 사이 성적, 인종적 다양성을 강조하는 미국 아카데미 영화상의 변화가 올해만큼 두드러진 적도 없었다. 여우조연상의 윤여정, 남우조연상의 대니얼 컬루야, 흑인 여성 최초로 의상상, 분장상을 받은 미야 닐이 그런 흐름을 잘 보여주지만 가장 상징적인 인물은 '노매드랜드(Nomadland)'로 감독상, 작품상을 받은 중국계 클로이 자오가 아닐 수 없다. 지난해 봉준호 감독에 이어 2년 연속 아시아계의 감독상, 작품상이자 아카데미 90여 년 역사에서 두 번째 여성 수상이었다.
□ 베이징의 여유 있는 가정에서 태어난 자오는 열네 살 때쯤 부모가 이혼하는 혼란 속에 중국을 떠나 영국의 기숙학교를 거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고등학교를 마쳤다.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후 뒤늦게 뉴욕대에서 영화를 배웠지만 초창기 단편영화는 물론이고 이번 '노매드랜드'까지 모두 3편이 고작인 장편영화들이 한결같이 주목받았다. 게다가 아직 30대라니 "쾌거"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수상이다.
□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오의 모국 중국의 정부와 언론은 이 경사를 반기지 않는다. 지난달 26일 수상 소식을 중국 어느 매체도 보도하지 않았다. '노매드랜드'의 중국 번역인 '無依之地'로 중국의 SNS를 검색하면 '법률과 정책에 의거해 표시할 수 없다'는 문구만 뜬다. 지난달 23일 중국 개봉 예정이었지만 아직도 상영되지 않고 있다. 자오가 2013년 미국 잡지 필름메이커와 인터뷰에서 "중국은 도처에 거짓이 있는 곳"이라고 말한 게 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두고 알려진 뒤부터라고 한다.
□ 그뿐 아니다. 홍콩에서는 거의 50년 만에 아카데미 시상식이 방송되지 않았다. 단편 다큐멘터리상 후보에 홍콩 시위를 담은 노르웨이 감독의 영화 'Do Not Split'가 올랐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런 사안에 대한 질문에 중국 외무성은 대답을 피한다. 국경없는기자회의 최근 언론자유 보고서에서 중국은 177위로 세계 최하위권이었다. 과연 중국이 "세계 평화의 건설자, 글로벌 발전의 공헌자, 국제 질서의 수호자"(시진핑)라고 자랑할 만한지 되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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