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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이 성경이냐”던 이준석에게

입력
2021.05.03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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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국민의힘 전 최고위원. 한국일보 자료사진, 페이스북 캡처

이준석 국민의힘 전 최고위원. 한국일보 자료사진, 페이스북 캡처


3주 전 나는 이 지면에 젊은 정치인 이준석의 반페미니즘을 비판하는 글을 썼다. 마지막 문장이 이랬다. “세상이 변했다. (페미니즘이) 이해하기 힘들면 외워야 한다.” 이에 이준석은 내 글을 자신의 SNS에 공유하며 “성경입니까, 외우게”라고 비아냥댔다. 늦었지만 그에게 답한다. 페미니즘은 성경 말씀이 맞다. 그러니까 이 세계사적인 새 윤리 규범은 외워서 내면화하는 게 좋겠다.

예수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했다. 벌써 2,000년 된 가르침이다. 하지만 그 오랫동안 우리는 이웃을 나와 등가(等價)로 여기는 데, 타자화된 인간을 나와 동등한 지위에 올리는 데 실패해왔다. 성경 말씀을 따르지 못했다. 신분에 따라 누군가를 지배하고, 인종과 소수자를 차별하고, 여성을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들어왔다.

근대 혁명 전까지 인간은 신분제가 자연스러운 일인 줄 알았다. 몇 세기 전만 해도 인권은 선택받은 자들만의 권리였다. 미국에서 흑인은 한때 물건처럼 거래됐다. 그들에게 참정권을 주고 시민으로 받아들인 지도 시간이 꽤 지났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2등 시민이다. 흑인 대통령까지 나왔지만, 그 공고한 차별 질서는 여전하다. 오랫동안 미국 흑인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줬으니, 그 질서를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해도 되는가? 젠더 문제에서 ‘기회의 평등’만을 앵무새처럼 되뇌는 이준석의 논리대로라면 대답은 “그렇다”일 것이다.

한국에서 여자들이 어떤 대접을 받아왔는지 우린 잘 알고 있다. 유교적 가부장제가 지배해온 기나긴 역사는 여성들의 주체성과 정치적 목소리를 박탈했다. 그 억압과 폭력의 자리에 ‘모성의 신화’만 심었다. 여성도 이 세계의 동등한 주인이라는 목소리가 이제서야 겨우 힘을 얻고 있다. 예수가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한 이웃에, 언제 여성은 제외하라고 했던가?

사법부의 성인지 감수성과 성폭력 양형 기준이 높아진 건 최근 일이다. 성범죄에 피해자 중심주의가 들어섰고, 2차 가해에 대한 비난이 당연한 일이 됐다. 이런 것이 남자들이 스스로 깨달아 베푼 일인가? 다 여자들이 힘겹게 싸워서 얻은 것들이다. 여자들이 시끄럽게 하기 전에는 이 사회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준석이 시비하는 여성 할당제는, 이 세계의 공고한 남성 카르텔을 정치적으로 중립화하려는 인류사적 기획이다. 선진국 대부분이 동의해 공적, 민간 부문에서 성비 균형을 위해 여러 할당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준석은 이 시대적 흐름의 뜻이 무엇인지 살펴보지 않고, 자신의 우물 안에서 개구리처럼 외로운 호기를 부리고 있다.

이준석의 말대로 여성 할당제를 없애고, 지금부터 기회만 공정하게 부여하면 이 사회의 남성 지배적 질서가 자연스럽게 교정되는가? 이 세계의 인사권자와 의사 결정권자 대부분이 남자인데, 그들 스스로 카르텔을 해체할 것이라는 선의라도 믿으란 말인가? 이런 게으른 생각은 차별의 시간을 더 연장하겠다는 말과 똑 같다.

누군가에 대한 억압을 줄일 때, 이 세계 자유의 총량은 늘어난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좀 더 나은 인간이 된다. 여성을 이 세계의 동등한 주인으로 절대적으로 환대하는 것, 그리고 그들이 남성들과 똑같이 주체적 삶을 완성할 수 있도록 하자는 얘기가 그리 이해하기 어려운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반페미니즘은 인종주의와 마찬가지로 지적 선택지가 아니다. 차별과 편견을 강화하는 시대착오적 태도일 뿐이다.



이주엽 작사가, JNH뮤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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