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질문을 받는 사람으로 살고 있었다. 진료실에서 의사로만 일했다면 알 수 없는 세계였다. 물론 진료실 또한 많은 질문이 오갔지만 질병이나 의학 지식에 국한되었다. 진료실 바깥에서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자 사람들은 책이나 특정한 주제에 대해 다양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세상에는 다양한 성격의 많은 자리가 있었다. 일단 책을 낸 작가로서 북토크 행사가 있었다. TV나 라디오 방송도 있었고, 인터뷰 기사, 유튜브나 팟캐스트, 시사 프로그램의 대담도 있었다. 그런 자리에서는 항상 질문지가 따라다녔다. 준비한 내용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강연이 아니라면, 항상 사회자가 질문을 던지고 내가 답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생각해보면 초청자가 있는 대담에서는 문답하는 방식이 가장 자연스러웠다.
그렇게 오랫동안 많은 질문을 받았다. 항상 비슷하게 나오는 질문이라 녹음기를 켠 것처럼 답변이 튀어나가는 질문이 많았다. 특이하거나 너무 구체적이거나 철학적이어서 고민하게 되는 질문도 있었다. 지금까지 받은 질문 중 가장 인상적인 질문이 무엇이었냐는 질문까지도 있었다. 많은 자리는 질문과 답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질문으로 시작되는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언제나 열심히 답하려고 애썼다. 같은 질문이어도 상황에 맞추어 다르게 대답하려 했다. 다른 답변을 찾고 싶어 스스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질문을 던지는 사람을 유심히 관찰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경청하는 눈빛으로 나를 보아주었고, 대부분 꼭 만나 뵙고 싶었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런 눈빛을 보면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어느덧 질문을 받는 일에 너무나 익숙해졌다. 답을 하는 일이 꽤 중요하고 힘든 일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전 한 책의 저자와 북토크를 진행할 일이 있었다. 이번에는 순전히 질문을 던지는 일이었다. 며칠 전부터 책을 꼼꼼히 읽고 질문을 정리했다. 그것들을 흐름을 가질 수 있게 재배치해서 대본을 작성했다. 저자의 철학을 읽어내서 더 좋은 이야기를 이끌어내기 위해 고민했다. 공부할수록 더 많은 것들이 궁금해졌고 정말로 뵙고 싶어졌다. 상대방을 깨끗하게 존경하고 탐구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막상 진행이 쉽지만은 않았다. 다음 질문의 흐름을 생각하느라 경청이 어려울 때도 있었고, 조금 더 좋은 질문으로 상대방의 깊은 이야기를 이끌어내지 못해 아쉽기도 했다. 그리고 질문을 만드는 다른 세계를 보았다. 타인에 대한 존중이 바탕이 되는, 훨씬 더 품이 많이 들고 어려운 일이었다. 내게 질문해준 많은 사람은 이 과정을 거쳐낸 것이었다. 어쩌면 답을 하는 일보다도 더 귀중한 작업일지 몰랐다.
저번 주까지 동료 작가와 문학 웹진에서 매주 서간문을 주고받았다. 그는 훌륭한 인터뷰어로 많은 작업을 진행했었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질문을 던졌던 경험이 부족했다. 서간을 주고받을수록 그가 질문을 던지고 내가 답을 하는 형국이 되었다. 결국 나는 상대방을 존중하는 일에서 도망쳐 질문지를 받아든 것처럼 정성스럽게 답을 하고 있었던 셈이었다. 마지막에는 내가 주로 자신의 이야기만을 이끌었다는 내용을 도표로 정리해서 받아들고, 마음이 통렬했다. 상대방을 존귀하게 여기는 마음만큼 더 깨끗하고 귀한 것이 없었다. 질문으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나는 배울 것이 너무나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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