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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나는 헌법주의자”라고 밝힌 것은 2019년 9월 9일 대검 간부들과의 점심 자리에서였다. 그날 조국 법무부 장관이 임명장을 받았고, 밤에는 서울대 학생ㆍ동문 촛불집회에서 “공정과 정의는 죽었다”는 구호가 퍼졌다. ‘조국 사태’로 갈등이 첨예한 상황에서 공정ㆍ균형 같은 헌법정신과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재삼 강조한 윤 전 총장은 이후 주요 국면마다 헌법정신을 소환하며 ‘정권과 맞서다 핍박받는 외곬 검사’ 이미지를 쌓았다.
□ 윤 전 총장은 3월 4일 퇴임 당시 여당의 검찰 수사권 폐지를 “헌법정신 파괴”라고 직격했다. 몇몇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검수완박’을 위한 중대범죄수사청 설치가 “헌법정신에 위배된다”고 비난했다. 지난해 12월 1일 “헌법정신 수호”를 다짐하며 총장직에 복귀한 그는 “헌법 가치와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공정하고 평등한 법 집행’으로 ‘국민의 검찰’이 되자”며 검찰 구성원들을 독려했다.
□ 윤 전 총장의 헌법정신 적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검찰 관련 사안을 넘어 정치ㆍ사회 이슈마다 헌법정신을 결부시키며 정치적 행보를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그의 5ㆍ18 메시지는 ‘정치인의 언어’로 읽히기에 충분할 정도다. 5ㆍ18 정신이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이며 “독재와 전제에 대한 거부와 저항의 명령”이라는 입장은 “헌법의 핵심 가치인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허울을 쓴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것”이라던 지난해 8월 발언과 맥락이 닿아 있다.
□ 그러나 그가 말하는 헌법정신은 자기중심적이다. 자유와 민주를 강조하면서 독재나 전제와 손잡은 검찰 과거사에 대한 반성은 없다. 5ㆍ18 정신을 헌법의 인권 정신과 북한 인권 문제에까지 연결해 말하면서도 검찰의 수많은 기본권 침해에 대해선 입을 닫고 있다. 권력 입맛에 맞게 수사결과를 바꾸고, 제 식구 감싸기로 법 정의의 실현을 가로막은 원죄에 대해서도 말이 없다. 대권에 도전하는 순간,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되는 문제는 또 뭐라 할지 궁금하다. 전직 검찰총장이라면 어설픈 정치인 따라 하기식 메시지 발신에 앞서 검찰의 과거 헌법정신 훼손부터 성찰하고 사과하는 것이 헌법주의자로서의 도리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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