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친문 강성 당원들의 문자폭탄에 대해 문제 제기를 지속해온 조응천 의원이 얼마 전 한 방송사 시사 프로그램에서 했던 말이 기억난다. “너는 민주당에 맞지 않으니 나가라고 하는데 실은 제가 늘 해오던 말이 그거다. 저는 민주당하고 안 맞는 사람이다.”
재선 의원인데 서슴없이 당과 맞지 않다고 말하다니 배포와 강단이 만만치 않다고 느꼈다. 박근혜 정부 때 검사 출신의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2016년 2월 영입 당시에도 조 의원은 민주당 색깔과 다른 사람이긴 했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그를 영입한 이유는 분명하다. 당시만 해도 민주당은 수권 가능성이 높지 않았다. 안철수 전 대표의 탈당 여파가 컸고, 당도 헤게모니 싸움으로 지지부진했다. 민심을 얻기 위해선 친노ㆍ친문의 강경한 이미지를 희석시키고 당의 외연을 넓히는 인재 영입이 필요했다.
“민주당에는 갈 마음이 전혀 없다”는 식당 주인 조응천을 구슬려 가며 영입한 사람이 문재인 당시 당대표였다. 그때 민주당이 공식 트위터 계정에 올린 글엔 “오늘 조응천 전 비서관이 전격 입당합니다. 민주당이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도 함께 토론하고 혁신할 수 있음을 보여줄 분입니다. 조 전 비서관을 응원합니다”라는 대목이 있다. ‘민주당원 조응천’은 민주당이 ‘진보의 폐쇄성’에서 벗어나겠다는 약속이자 실천이었다.
그랬던 민주당에서 이번 문자폭탄 논쟁을 거치는 동안 조 의원을 향해 “당원들과 정체성이 맞지 않으면 본인이 정당을 잘못 선택한 것” “싫으면 관둬라”라고 거친 반응을 내뱉는 의원이 적지 않았다. 5년 만에 180도 상황이 바뀐 셈이다. 조 의원 주장이 옳기만 한 건 아닐 것이다. 그렇다 해도 처음부터 민주당과 ‘다른 생각을 가졌던’ 사람에게 이제 와서 당과 정체성이 맞지 않다고 타박하는 건 부당해 보인다. 조 의원은 지금도 “내 소임은 중도의 길을 가는 것”이라며 “나는 당초 입당 조건대로 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변한 쪽은 민주당 같다. 언젠가부터 민주당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고 말하는 정당이 됐다. 지지층 결집과 원팀 기조에 반하는 목소리는 참지 못하고 집단으로 몰려가 응징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금태섭 전 의원은 '조국 사태'에 다른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당을 떠나야 했고, 청년 의원들은 지방선거 참패 반성문을 쓰면서 조국 사태를 거론했다는 이유로 ‘초선 5적’이라고 난타당했다. 소수 강경파가 주도하는 여론에 침묵하는 다수가 편승하면서 당심이 민심과 괴리되어 간다는 우려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금태섭·조응천 류의 소신파와 동거가 불편한 강경파들은 174개 의석 가운데 몇 자리가 빈다 해도 티도 안 날 것으로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하나 둘씩 배제하고 끼리끼리 패거리만 남는 게 좋기만 한 일일까. 자타가 인정하는 우수한 두뇌집단이라도 집단사고의 함정에 빠지면 불합리하거나 경솔한 의사 결정이 일어난다는 게 심리학의 결론이다. 과잉 대표된 강성 당원들에 의해 당 노선이 좌지우지되고 한줌의 반대 목소리마저 억눌린다면 민심과 멀어지는 건 시간문제다. 대선은 중원 싸움이다. 민주당이 이기고 싶다면 침묵하는 다수 당원들도 목소리를 낼 수 있게 언로를 만들고, 이질적 견해나 비판적 사고를 갖고 있어 당신이 필요하다던 열린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 조응천을 다시 품을 것인가, 아니면 제2의 금태섭을 만들 것인가. 민주당은 지금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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