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밉지 않은 '관종'

입력
2021.05.20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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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정용진 SSG 랜더스 구단주가 자신의 SNS에 올린 구단 유니폼 착장 사진. 정용진 부회장 SNS 캡처

정용진 SSG 랜더스 구단주가 자신의 SNS에 올린 구단 유니폼 착장 사진. 정용진 부회장 SNS 캡처

"너무 짜증나는 고릴라XX. 나랑 하나도 안 닮음".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이 코멘트와 함께 SNS에 올린 제이릴라(정 부회장을 본뜬 고릴라) 캐릭터엔 1,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63만 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그는 SNS에서 이미 '셀럽'이다. 매일 서너 개의 글과 사진을 올리며 일상을 공유하고 소통한다. 다른 세상에서 살 법한 대기업 총수의 정제되지 않은 말에 대중은 열광한다.

정 부회장의 '폭주'는 야구단 인수를 전후로 더욱 아슬아슬해졌다. 지난달 27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잠실구장 방문이 화제가 되자 그는 음성 기반 소셜미디어 '클럽하우스'에서 대화방을 열었다. 신 회장을 '동빈이 형'이라 칭한 정 부회장은 "내가 롯데를 도발했기 때문에 야구에 관심이 없던 동빈이 형이 야구장에 왔다"면서 "롯데가 본업과 야구를 연결하지 못하고 있다"며 유통 라이벌 롯데를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참여자들이 자제를 요청하자 "지금이라도 동빈이 형이 연락해 '너 그만하라'고 얘기하면 그만하겠다. 아직 전화가 안 왔다"고 받아쳤다. "롯데 외 라이벌은 어디냐"라는 질문에는 키움 히어로즈 인수 실패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하며 "다 발라버리고 싶다"고 수위를 높였다.

프로야구 40년사에 이런 구단주는 없었다. 상대팀을 대놓고 도발하는 구단주, 비공식 자리지만 비속어를 거침없이 쏟아내는 구단주는 분명 처음 보는 캐릭터다.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신선한 충격이었다. 지금껏 기자들도 직접적으로 접해볼 수 없던 내밀한 정보를 구단주를 통해 들어본 건 처음이다. 그래서 젊은 야구팬들은 그의 행보를 신선한 소통으로 받아들인다. 정 부회장은 야구단 인수 직후 김택진 NC 다이노스 구단주를 거론하며 "'택진이 형'이라고 부르는 것이 부러웠다. '용진이 형'으로 불러 달라"며 먼저 대중에게 손을 내밀었다. 은둔형, 권위주의적 오너십에서 벗어난 구단주의 파격 행보에 팬들은 "지금까지 이런 구단주는 없었다"며 지지를 보낸다.

정 부회장의 SNS 활동이 긍정적인 면만 있는 건 아니다. 그는 지난해 여름 SNS에 "백만년 만에 영화관에 갔는데 관객이 두 명(나 포함)"이라는 글과 함께 상영 중인 영화가 노출된 사진을 올렸다가 역풍을 맞기도 했다. 소비자인 팬과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스포츠에선 자충수의 우려가 더 크다.

다만 그의 집요한 소통은 어느 정도 계산된 마케팅의 일환으로 보이긴 한다. 유통에서 해 왔던 방식 그대로다. 정 부회장이 방송에서 즉흥적으로 백종원의 요청을 받아 사들인 못난이 감자는 이마트에서 완판했고, SNS에 올렸던 피코크의 진진 멘보샤 제품은 수십만 개가 팔렸다.

인기로 먹고사는 프로야구에서, LG 두산 롯데와 같은 빅마켓을 따라잡기 위해선 더 필요한 전략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일상을 대중에게 여과없이 보여주는 사람들을 시쳇말로 '관종(관심종자)'이라고 부른다. 지난달 정 부회장은 SNS에 SSG 유니폼 상ㆍ하의를 풀착장한 사진을 올렸다. 전 메이저리거 박찬호가 댓글로 "지명타자입니까"라고 묻자 그는 "응원단장"이라고 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관종임엔 틀림없는 것 같다. 선을 넘지 않는다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위축된 프로야구 흥행으로 봐서도 아직까진 밉지 않은 관종이다.

성환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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