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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문재인 대통령 관련 기사에 악플을 단 현역 군인이 ‘상관모욕죄’로 유죄판결 받은 걸 두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시끄럽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도 위계상 상관인지라 엄한 처벌로 군율을 세워야 한다는 찬성론과 표현의 자유 차원에서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반대론이 큰 틀에서 부딪친다. 문재인 정부를 향한 이념적 잣대와 병영의 기강해이에 대한 세대 갈등까지 논쟁을 부추기는 요소로 등장했다.
□ 명령과 규율이 생명인 군대의 특성을 감안해 군형법은 일반 형법에 비해 엄한 처벌규정을 두고 있다. 모욕죄만 하더라도 형법은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는 최고 징역 1년’이라는 단순한 조항 하나가 전부다. 반면 군형법은 ①면전에서 상관을 모욕하면 2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 ②연설 등으로 상관을 모욕하면 3년 이하 징역 등으로 상황을 구분, 강도 높게 처벌한다. 법원이 조항 ①을 엄격히 적용해 전화상으로 상관을 욕한 군인에게 면죄부를 준 경우는 있다. 하지만 SNS 댓글로 헌법상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을 모욕한 군인은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모두 처벌을 받았다.
□ 군형법과 달리 일반 형법의 모욕죄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피해자 고소가 요건인 친고죄인데 각자 느끼는 모욕의 범위가 달라 자칫 수사기관이나 법관의 주관적 잣대에 휘둘릴 수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는 비판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사이버 모욕죄 신설을 추진했지만 같은 이유로 무산됐다. 합헌으로 결정한 2013년 모욕죄 위헌심판에서는 “상당수 국가에서 폐지나 사문화하고 있으며 국제인권기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소수 의견이 상당수 나왔다.
□ 군형법에서 상관모욕죄는 친고죄가 아니다. 이번 사건도 민원인 신고를 접수한 육군 수사기관에서 피해자인 대통령의 의사와 무관하게 기소했다. 다행히도 군사법원 재판부가 ‘대통령이 상관인 점을 진지하게 인식하지 못한’ 피고인의 정상을 참작,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상관모욕죄 폐지야 시기상조일 수 있다. 하지만 징병대상인 2030세대가 SNS를 일상으로 사용하고 정치 비판을 표현의 자유로 폭넓게 인정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정치인 험담 사건에서 사법 자제는 견고하게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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