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부모가 그렇게 가르쳤어?”
이 말을 듣고 주먹을 날리지 않을 사람은 없다. 십중팔구 드잡이가 벌어진다. 그런데 만약 ‘손님이 왕’인 곳에서 ‘고객’이 이렇게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들이 앱이나 인터넷에 몇 개의 별점을 주느냐에 따라 생사가 갈리는 식당 주인이나 영세 자영업자 입장에선 억장이 무너져도 참아야만 한다. 배달 주문한 새우튀김 색이 이상하다며 항의하는 손님으로부터 이런 수모를 당한 김밥가게 50대 여주인도 그렇게 화장실로 가 남몰래 눈물을 삼켰다.
□ 그러나 점주의 사과와 환불에도 ‘고객’은 주문 앱 리뷰에 혹평과 별점 테러를 남겼다. 이때 배달 플랫폼 기업에서 전화가 온다. 업주는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억울함을 호소하는데도 기업은 갑질 고객 편만 든다. 결국 여주인이 통화 중 뇌출혈로 쓰러진다. 그럼에도 기업은 전화를 이어 받은 식당 직원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전달해 달라”고 한다. 여주인이 깨어나지 않는다는 직원의 말에도 “추후 조심해 달라”고 덧붙인다. 그렇게 여주인은 세상을 떴다. 곧 남편도 쓰러졌다.
□ 막말과 무리한 요구를 하는 진상손님이나 블랙컨슈머는 전에도 있었다. 이번에 새우튀김 사건이 공분을 일으킨 건 쿠팡이츠의 대응 때문이다. 사람이 죽어가는 상황에도 이 기업은 민원이 생기면 안 된다는 말만 반복했다. 목숨보다 이익을 중시한 셈이다. 쿠팡에서 일하다 숨지는 노동자가 잇따르는 배경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사실 쿠팡 같은 빅데이터 기업이 악성 고객을 골라내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러나 쿠팡이츠는 점주들을 보호하긴커녕 리뷰에 답글을 달 최소한의 반론권도 보장하지 않았다.
□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19로 비대면 주문이 늘면서 배달 음식 풍속도도 크게 달라졌다. 그러나 고객과 식당, 배달 노동자, 플랫폼 기업이 서로 존중하는 문화까지 성숙됐는지는 의문이다. 적잖은 수수료를 챙기는 기업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은 더 크다. ‘배달 중개 플랫폼의 개선이 시급하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리뷰와 평점 시스템의 보완, 플랫폼 기업의 의무 강화, 악의적 이용자에 대한 관리 등을 제안했다. 더 이상 별점이 사람 목숨을 앗아가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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