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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빈과일보

입력
2021.06.25 18: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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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홍콩의 대표적 반중 매체 빈과일보의 폐간 전 '마지막 신문'을 사려는 시민들이 24일 시내 가판대 앞에 길게 줄지어 서 있는 가운데 한 여성이 폐간호 1면을 들어 보이고 있다. 홍콩=AP연합뉴스

홍콩의 대표적 반중 매체 빈과일보의 폐간 전 '마지막 신문'을 사려는 시민들이 24일 시내 가판대 앞에 길게 줄지어 서 있는 가운데 한 여성이 폐간호 1면을 들어 보이고 있다. 홍콩=AP연합뉴스

"아담과 이브가 사과를 먹지 않았다면 세상에는 선악도 없고 뉴스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패션 브랜드 지오다노로 큰돈을 번 지미 라이가 홍콩에 빈과일보를 창간하면서 제호에 '사과'를 붙인 건 언뜻 장난 같아 보이지만 나름 의미가 있었다. 그렇다고 빈과일보가 사회의 목탁을 자임하는 정통파 매체는 아니다. 연예인 가십, 정치인·기업인 스캔들, 대중의 관심을 끌 만한 선정적인 르포를 즐겨 다루는 시사주간지 성향의 일간지였다.

□ 대중이 알아야 할 것보다 알고 싶어하는 것에 더 비중을 두는 이런 보도 태도를 두고 홍콩 언론의 선정성 경쟁을 부르고 하향 평준화했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런 방향성 덕분에 빈과일보는 짧은 기간 50만 부 발행을 자랑하는 유력지가 됐다. 지미 라이가 패션 사업을 접고 빈과일보를 포함한 미디어그룹을 구축한 중요한 계기의 하나가 톈안먼 사태라고 한다. 중국의 일당 독재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이런 대중성에 실어서 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 홍콩의 중국화에 가속이 붙으며 반중 민주주의 대열의 선봉에 섰던 빈과일보가 24일 폐간으로 내몰렸다. 논조 때문에 중국판은 애초 발행이 금지됐었고 26년 만에 본사마저 문을 닫았지만 이것이 끝은 아니다. 빈과일보는 2003년부터 대만에서도 발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만에는 연합보, 중국시보, 자유시보라는 3대 유력지가 있었지만 홍콩에서와 비슷한 전략으로 대만 빈과일보는 단기간에 성장해 4대지 구도를 만들어냈다. 홍콩에서와 마찬가지로 대표적인 반중 매체다.

□ 중국 반환 얼마 뒤이던 2002년까지도 홍콩은 국경없는기자회가 발표하는 언론자유지수 순위에서 아시아 최고 수준인 18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 뒤로 계속 추락해 지금은 80위에 그친다. 빈과일보 폐간이 반영된 다음 발표에서는 더 떨어질 게 분명하다. 올해 대만의 언론자유지수는 아시아 최고인 한국(42위) 바로 다음이다. '하나의 중국'을 고집하는 중국이 대만을 향한 무력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홍콩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그 모습이 대만의 미래가 되어서는 안 된다.

김범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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