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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나는 마오쩌둥을 읽었다. 칼 마르크스를 읽었으며, 레닌도 읽었다. 그렇다고 내가 공산주의자가 되지는 않았다.” 23일 미 연방하원 군사위. 공화당 의원들이 좌파 논리에 뿌리를 둔 ‘비판적 인종이론(CRT)’의 군내 교육을 지적하자 마크 밀리 합참 의장이 입을 열었다. “군은 열린 사고를 해야 하며,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왜 수천 명이 이(의사당) 건물을 공격하고 헌법을 전복시키려 했는지 알고 싶다.” 4성 장군의 소신 발언은 2분 가까이 멈추지 않았다. “우리가 지켜야 할 이 나라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는 게 왜 문제인가.”
□ 밀리 의장은 트럼프가 재선 정치 광고에 등장시킬 만큼 보수진영의 총애를 받던 인물이다. 그런 장군의 신념에 공화당 의원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폭스뉴스의 유명 앵커 터커 칼슨이 ‘멍청이 돼지’라고 비난했지만 여론도 밀리 의장의 사이다 발언에 손을 들어줬다. 한 네티즌은 ‘어디로 장미를 보내야 하느냐’고 물었다. 민감한 사안이라도 군이 파악할 책임이 있다는 장군의 소신은 군에 대한 신뢰로 이어지고 있다.
□ 비판적 인종이론은 법과 제도가 백인을 보호해 유색인종을 차별하고 불평등을 초래한다는 주장이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이론을 미국에 적용한 것인데 작년 경찰 폭력에 사망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학계 담장을 넘었다. 보수진영은 역사를 왜곡하고 사회를 분열시키는 미국판 문화대혁명이라며 반대한다. CRT의 학내 교육을 금지하는 트럼프의 행정명령을 바이든이 뒤집자 보수성향의 주(州)들은 교육제한 조치로 맞서고 있다.
□ 태평양 건너 뜨거운 문화전쟁에 군이 개입한 것에 비하면 우리 국방부 시계는 멈춰 서 있다. 군 적폐청산위가 성폭력을 적폐로 지목했지만 공군 부사관 사망사건은 8년 전 육군 여성 장교 사건의 판박이다. 사건이 발생한 공군 20전투비행단에선 최근 4년간 4명이 부대 내 문제로 목숨을 끊었다. 우리는 전투기를 직접 제작하는 여덟 번째 나라이고 연간 55조 원의 국방비를 쓴다. 국방비를 아무리 많이 쓰고 방위력 순위가 올라갔다고 해도 신뢰가 없으면 전투력은 기대할 수 없다. 신뢰의 둑이 터진 지금 군의 문제는 결국 사람이다. 군에서 소신 있는 목소리가 나온지 오래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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