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반대 홍남기에
민주당 “철학 안 맞는다”며 연일 비난
갈팡질팡 ‘표퓰리즘’이 정권 철학인가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더불어민주당에서 또 ‘조리돌림’을 당하고 있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나눠 주자는 당의 요구에 또다시 반대한 데 대한 공격이다. 경제사령탑임에도 정치에 휘둘려 번번이 정책 소신을 굽힘으로써 ‘홍백기’라는 조롱 섞인 별명까지 얻으며 자리를 지켜온 보람이 고작 우군(友軍)의 조리돌림인가 싶어 안쓰러울 정도다. 하지만 정작 더 서글픈 건 홍 부총리를 욕하는 정권 실세들이 너도나도 문재인 정부의 ‘철학’을 입에 올리는 모습이다.
당 원내대표를 지낸 우원식 의원은 “전 국민 위로금이라는 게 문재인 대통령의 철학인데, (홍 부총리는) 철학이 다른 것 같다”며 “이래서 어떻게 같이 갈 수 있겠냐”고 했다. 가끔 ‘돌직구’ 입담으로 한몫하는 정청래 의원은 더 나아갔다. 페이스북에 올린 ‘홍남기 부총리, 정신 차리세요’라는 도발적 제목의 글에서 그는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나? 재난지원금은 코로나19로 고생한 전 국민을 국가가 위로하는 차원”이라며 “이 정부와 철학이 안 맞는 인사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하지만 잠깐만 돌아봐도 이들이 내세우는 철학이란 게 얼마나 허망하고 혼란스러운 것인지 금방 드러난다. 문 대통령이 지난 2월 “코로나19에서 벗어나면 전 국민 위로금 지원을 검토할 수 있다”고 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당시 대통령 언급은 4차 재난지원금 전 국민 지원 여부를 두고 당정 갈등이 고조되자 당에 “재정도 살피라”며 전 국민 지원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밝힌 뒤 단서조항처럼 덧붙인 맥락이라 전 국민 지급이 대통령 철학이라고 하는 건 무리다.
게다가 철학이라고 하려면 수렴적 사고를 통해 우선순위를 결단하고, 실천단계에서도 걸맞은 정합성을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수시로 “재정이 허용하는 범위”를 전제로 내세우면서도 그 뜻을 명확히 하지 못한 채, 다른 한편으론 ‘전 국민 위로금’을 언급함으로써 되레 국정을 혼돈에 빠트리는 우를 범해왔다. 그 결과 민주당에는 지금도 차기 대선용으로 추석쯤에 전 국민 위로금을 풀자는 쪽과, 전 국민 지급에 반대하는 다수의 대선주자들이 혼재하는 갈팡질팡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따지고 보면 지금 문재인 정권에 철학이라고 할 만한 게 도대체 남아 있기나 한 건지, 스산한 느낌마저 들 정도다. 선명했던 공정과 정의의 깃발은 정권 핵심부의 잇단 ‘내로남불’과 위선으로 갈갈이 찢겨 흔적조차 묘연해진 상태다. ‘1대 99 사회’의 보정과 경제 지속성장을 겨냥한다며 내놓은 ‘포용정부’ 철학 역시 강퍅한 이념과잉과 소득주도성장 같은 실천정책의 잇단 실패로 찌그러진 양철 간판만 남은 상태다.
부동산 정책의 철학 실종은 더 심각하다. 정권 초기 ‘지대개혁론’이니 ‘투기와의 전쟁’이니 하며 당장 세상을 바꿀 것처럼 떠들썩했지만 무능 탓에 투기는 들불처럼 번졌고,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그 결과 집을 가진 사람이나 못 가진 사람이나 모두 불만과 분노가 폭발 지경에 이르자 이번엔 집 가진 사람들 부동산 세금 깎아주고, 못 가진 사람들에겐 또다시 ‘대출로 집 사라’식 정책을 펴는 등 정책기조 자체가 뒤죽박죽이 된 형편이다.
도떼기시장판으로 전락한 정권에서 유일하게 작동하는 정책 논리는 집권 연장을 겨냥한 ‘표퓰리즘’뿐인지 모른다. 정책의 현실성이나 가치 판단 따위는 외면하고 오직 표를 겨냥한 인기영합책만 펴는 게 표퓰리즘이다. 이미 청와대는 국정 주도권을 잃은 채 표퓰리즘에 휘둘리는 조짐이 뚜렷해지고 있다. 결국 차기 대선까지 남은 8개월여간 철학 부재의 표퓰리즘에 맞서고 견제할 주체는 또다시 각성된 국민일 수밖에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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