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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도취를 넘어... 여성의 몸, 이제는 편안해지고 싶다

입력
2021.07.10 04:3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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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내 몸, 건강하게 꾸리기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과학을 읽습니다. 역사 에세이스트 박신영 작가는 '백마 탄 왕자' 이야기에서 장자상속제의 문제를 짚어보는 등 흔히 듣는 역사, 고전문학, 설화, 속담에 배어 있는 성차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번갈아 글을 쓰는 하미나 작가는 과학사 전공자답게 2030 여성의 건강문제, 덜 눈에 띄는 여성의 산업재해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프리다이빙 중인 하미나 작가. 하미나 작가 제공

프리다이빙 중인 하미나 작가. 하미나 작가 제공

프리다이빙을 취미로 갖고 있다. 공기통을 메고 들어가는 스쿠버 다이빙과는 달리 프리다이빙은 자신의 숨만큼만 물속에 잠수해있다 수면 위로 올라온다. 지난 주말에는 욕지도에 다녀왔다. 통영에서 배를 타고 욕지도에 도착해 다시 작은 배를 타고 가까운 바다로 나가면 다이버들은 튜브 모양의 부이(Buoy·일종의 부표)를 내려놓고 뛰어든다.

부이를 잡고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다가 잠수할 때가 되면 거의 잠들 것처럼 심장박동수를 가라앉힌다. "흐으읍!" 폐에 공기를 가득 넣고 잠수한다. 10m, 20m, 30m…. 깊이 잠수할수록 육지에서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만난다. 주변은 고요하고 온몸은 명상에 빠진다.

가장 깊이 잠수해 본 사람은 호주 프리다이버 허버트 니치. 그는 한 번의 숨으로 214m를 잠수하고 돌아왔다. 위험해 보이지만 프리다이빙은 스쿠버 다이빙보다 안전하다. 사실 깊은 수심에서 빠르게 상승할 때 압력 변화를 견디려면 인공 장비의 도움을 받지 않은 상태여야만 한다. 바다 아래에서 여분의 숨을 더 쉬게 되면 상승하며 몸속 공기가 급격히 팽창해 혈액이 끓고 폐가 손상된다.

보일의 법칙 거스르는 '마스터 스위치'

질량과 온도가 일정할 때 압력과 기체의 부피가 반비례한다는 보일의 법칙 핵심을 보여주는 실험 장면. 위키피디아

질량과 온도가 일정할 때 압력과 기체의 부피가 반비례한다는 보일의 법칙 핵심을 보여주는 실험 장면. 위키피디아

보일의 법칙은 기체의 부피가 압력에 따라 변화한다는 뜻이다. 오랫동안 과학자들은 보일의 법칙에 따라 인간이 깊은 수심을 잠수할 수 없다고 믿었다. 수심이 깊어질수록 수압이 강해져 폐가 쪼그라들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모하게 잠수를 시도하고 돌아온 사람들 덕에 이는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신비롭게도 인간의 몸에는 익사의 위험에서 우리를 구하는 '생명의 마스터 스위치'가 있다.

생명의 마스터 스위치란 1963년 생리학자 퍼 숄랜더가 포유류 잠수 반응(MDR)에 붙인 이름이다. 이 반응은 우리 얼굴이 물에 잠길 때 촉발되는 다양한 생리 반응을 일컫는다. 특히 뇌, 폐, 심장에서 강하게 일어나며 깊이 잠수할수록 반응도 강해진다. 폐는 혈액이 몰려 수압을 버티고, 말초혈관은 수축하며 감각이 둔해지며, 시냅스들 사이의 신호 전달 속도는 느려져 뇌는 깊은 명상에 빠진 듯한 상태가 된다. MDR은 고래 같은 수상 포유류에게서 강하게 나타나는데 인간에게도 잔존한다. 프리다이버의 심박수는 분당 11회까지도 떨어진다.

이 마스터 스위치는 생명의 역사가 우리 몸에 남긴 유산이다. 바다에 다녀올 때마다 '내 안의 물고기'를 생각한다. 진화의 역사 속에서 인간과 물고기가 하나이던 때가 있었음을 상기한다는 의미다.

고대의 어느 용감한 물고기는 감히 물 밖에 나올 시도를 했을 것이다. 얕은 물가를 돌아다니다 어느 날 지느러미로 자박자박 걸어보았겠지. 땅을 딛기 쉽도록 곧 손목도 생기고 지느러미도 갈라졌겠지. 지느러미는 시간이 흘러 지금 내가 타자를 치는 손가락이 되었다. 고생물학자 닐 슈빈은 그의 책 '내 안의 물고기'에서 '사람은 개조된 물고기'라 말한다.

프리다이빙은 이토록 거대한 역사를 상기하게 한다는 점에서 나를 겸손하게 한다. 바다에 들어가 너무도 거대한 공간 안에 있다 보면 내가 없어지는 것 같다. 나의 프리다이빙 선생님은 "프리다이빙은 자연과 싸워서 이기는 게 아니라 하나가 되는 스포츠야"라고 말한다.

프리다이빙과 극단에 있는 헬스

거울을 보며 달리고 근육을 키우는 헬스장에서의 운동은 통제와 관리의 운동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거울을 보며 달리고 근육을 키우는 헬스장에서의 운동은 통제와 관리의 운동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매일 바다에 갈 수 없으니 주중에는 헬스장에 간다. 두 운동이 매우 다른 성질의 것임을 느낀다. 프리다이빙이 자아를 잊게 한다면 헬스는 도취적이다. 바다에는 거울이 없으나 헬스는 거울을 보며 한다. 또 몸을 분절해 근육을 발달시키며 매일 사진을 찍어 기록하고 식단을 구성하며 이를 잘 지킨 나를 대견해한다. 통제와 관리의 운동이다.

사실 오랫동안 헬스장을 싫어했다. 몸을 변화시키고 아름답게 만들겠다는 욕망이 부글부글 끓는 것이 느껴져 힘들었다. 목표 지향적인 삶, 일상을 갈아 넣어 만든 유능함을 일에서뿐 아니라 몸에서까지 뽐내야 한다는 것이 징그러웠다.

무엇보다도 거울을 보며 하는 운동은 종종 나의 뿌리 깊은 '자기혐오의 마스터 스위치'를 켠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보디프로필 사진 피드를 보며 어떤 목소리를 들었다. '마르고 싶다. 지금 내 몸이 못 견디게 싫다.' 이런 내면의 목소리는 나뿐만 아니라 타인을 판단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더 위험하다.

강박적인 식단과 운동 루틴을 보며 때로는 이것이 자신을 사랑하는 행위인지 학대하는 행위인지 헷갈린다. 건강함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보디빌딩 선수의 몸은 프리다이빙 선수의 몸과 다르다. 운동선수가 모두 건강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장애가 있는 사람은? 만성질환을 앓는 사람은? 그들은 영원히 건강할 수 없나?

동서양의 몸은 다른 방식으로 탐구됐다

일본의 의학사학자 구리야마 시게히사의 '몸의 노래'는 몸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훌쩍 넓혀주는 책이다. 시게히사는 고대 그리스와 중국에서 출발해 어떻게 동서양이 서로 완전 다른 방향으로 몸에 관한 지식을 형성했는지를 말한다. 건강함을 판단할 때 우리는 어떤 시각적인 단서를 활용하는가? 고대 그리스인이 근육을 중심으로 본다면 중국인은 색(色)이 중심이 된다.

고대 그리스 남성들은 근육이 클수록 건강한 몸이라고 생각했다. 근육질의 몸은 적에 대한 공포를 나타낼 뿐 아니라 여성과 같은 타자의 몸과 자신을 구별하는 기준이기도 했다. 당시 근육 강화 훈련법 중 하나는 송아지가 황소가 될 때까지 어깨에 메고 다니기였다. KBS 2TV '옥탑방의 문제아들' 캡처

고대 그리스 남성들은 근육이 클수록 건강한 몸이라고 생각했다. 근육질의 몸은 적에 대한 공포를 나타낼 뿐 아니라 여성과 같은 타자의 몸과 자신을 구별하는 기준이기도 했다. 당시 근육 강화 훈련법 중 하나는 송아지가 황소가 될 때까지 어깨에 메고 다니기였다. KBS 2TV '옥탑방의 문제아들' 캡처

서양에서 건강한 몸은 근육질의 몸으로 표현된다. 갈레노스를 대표로 한 해부학의 역사 역시 근육에 대한 강조로 이뤄져있다. 이때 근육은 인간의 영혼, 곧 자기 주체의 의지에 따라 표현되는 대상이다. 근육은 자아의 의지를 실현하는 신체기관이다. 근육이 더 분절되고 커질수록 좋다. 그만큼 영혼, 주체로서의 인간이 자신의 몸을 강력하게 통제하고 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한편 중국에서 건강함의 단서가 되는 것은 색(色)이다. 이때 색은 단순히 색깔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해 파악할 수 있는 시각 정보의 총체에 가깝다. 얼굴의 색을 의미하니 안색 혹은 낯빛이라는 표현에 가까울 것이다. '낯빛이 안 좋다' '얼굴이 폈다' 등의 표현을 생각해보라. 중국인들은 낯빛을 통해 깊이 숨겨진 몸의 상태를 알 수 있다고 여겼다.

서양이 건강한 몸, 곧 근육질의 몸이 자기 의지 혹은 자기규정의 발현으로 여겼다면 동양은 건강한 낯빛이 사람의 본성과 살아온 세월을 드러내는 것이라 여겼다. 건강한 색은 꽃에 비유되었는데, 꽃처럼 피어나는 정신은 오랫동안 행한 다양한 망설임과 결정이 축적된 결과이며, 도덕적인 발전과 성장이 드러나는 지표였다. 서양이 몸을 장악함으로써 건강함을 얻고자 했다면 중국 전통에서는 우주와 몸의 상태가 서로 조화를 이룰 때 건강함을 얻는다고 보았다.

1341년 활수(滑壽)의 '십사경발휘(十四經發揮·왼쪽 사진)'와 1543년 베살리우스(Vesalius)의 '인체의 구조에 대하여(De humani corporis fabrica)'. 십사경발휘에서는 근육의 묘사는 없고 침술의 자리가 보인다. 베살리우스의 그림에서는 근육이 매우 상세히, 분절적으로 묘사된다. 도서출판 이음 제공

1341년 활수(滑壽)의 '십사경발휘(十四經發揮·왼쪽 사진)'와 1543년 베살리우스(Vesalius)의 '인체의 구조에 대하여(De humani corporis fabrica)'. 십사경발휘에서는 근육의 묘사는 없고 침술의 자리가 보인다. 베살리우스의 그림에서는 근육이 매우 상세히, 분절적으로 묘사된다. 도서출판 이음 제공


여성의 건강한 몸이란 무엇일까

많은 이들이 '마른 몸'에 집착하고 자기혐오에 빠지기도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많은 이들이 '마른 몸'에 집착하고 자기혐오에 빠지기도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어쨌든 시게히사의 분석도 모두 남성들이 남긴 전통에 관한 분석이다. 이제 여성에게는 어떤 이야기가 남았을까? 건강한 몸의 이야기가 지금보다 훨씬 더 다채로웠으면 한다.

개인적으로 마른 몸을 선망하며 내 몸을 덮어놓고 혐오하던 때는 지나갔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정말이지 너무도 오랫동안 친구들과 함께 수련한 결과다. 우리는 도저히 편안한 상태의 몸 이야기를 찾지 못하고 지쳐 약속했다. 체중 얘기하지 말자. 내 몸을 타인과 비교하는 말을 하지 말자. 외모 품평하지 말자. 더 이상 내 몸을 미워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사랑한다고 소리치는 것도 좀 머쓱하다. 이제는 그저 편안해지고 싶다.

이제는 살찐 몸보다 심혈관에 관심이 간다. 내 안의 물고기는 내가 이토록 오래 앉아있는 사람이 될 줄 모르고 인간으로 진화했다. 건강한 삶을 위해 운동과 식이는 어쨌든 필요하다는 결론이다. 자기를 혐오하지도, 자기에게 도취되지도 않으며 건강한 삶을 꾸리는 방법은 무엇일까? 여성들에게는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이런 고민을 내가 먼저 했을 리가 없다. 막막할 때면 언니들이 쓴 책을 본다. 보스턴여성건강서공동체가 짓고 또문몸살림터가 엮어 펴낸 '우리 몸 우리 자신'을 읽는다. '할 수 있다'고 맺는 문장이 내게 힘이 되었다.

"이상적인 몸매를 열심히 흉내 내도록 부추기는 권력의 정체를 알게 되면, 우리의 진실한 자아와 타협한 자아가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다. 우리는 자주적인 선택을 하면서 자유로움을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이런 여행을 시작하는 방식은 많다. 영양을 충분히 섭취하고 인간으로서 자신의 온전함을 존중하면서도 매력적으로 보이고 인정받는 방식을 탐구할 수 있다. 건강상 위험에 노출되지 않으면서도 몸을 꾸밀 수 있는 방식을 발견할 수 있다. 몸에서 일어나는 순수한 쾌락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순간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하미나 작가

하미나 작가


하미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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