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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크박스 뮤지컬의 가능성

입력
2021.08.13 04:3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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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공연 칼럼니스트인 박병성 월간 공연전산망 편집장이 한국일보 객원기자로 뮤지컬 등 공연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김광석의 노래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 '그날들'의 한 장면. 추억의 가수를 소환하는 대신 젊은 공연 관객층에 어울리는 소재와 스타일로 접근했다.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제공

김광석의 노래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 '그날들'의 한 장면. 추억의 가수를 소환하는 대신 젊은 공연 관객층에 어울리는 소재와 스타일로 접근했다.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최근 주크박스 뮤지컬이 연이어 무대에 오르고 있다. '소녀' '광화문연가' 등 이영훈 작곡가의 노래로 만든 뮤지컬 '광화문연가'가 공연 중이고, '비처럼 음악처럼' 등 우수에 찬 목소리로 서정적인 노래를 들려줬던 가수 김현식의 주크박스 뮤지컬 '사랑했어요'와 록의 전설 신중현의 곡으로 만든 '미인'이 공연을 앞두고 있다.

기존 가수의 노래를 토대로 제작된 주크박스 뮤지컬은 1999년 아바의 노래로 만든 '맘마미아!'가 성공하면서 2000년대 브로드웨이의 대표적인 트렌드가 됐다. 지난 20년간 엘비스 프레슬리, 존 레논, 프랭크 밸리와 포시즌스, 퀸, 밥 딜런, 마이클 잭슨, 캐롤 킹 등 수많은 팝 스타의 노래가 뮤지컬로 태어났다. 뿐만 아니라 1980년대 글램 록을 모아 만든 '록 오브 에이지'와 같이 다양한 가수의 노래를 묶어서 만든 뮤지컬도 등장했다.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주크박스 뮤지컬은 주로 해당 아티스트의 음악을 공유했던 팬들이 관객이 된다. 익숙한 노래, 검증된 음악으로 다양한 팬층을 공연장으로 불러 모은다. 그러나 주크박스 뮤지컬을 제대로 만들기는 매우 힘들다. 아버지로 추정되는 엄마의 옛 세 남자친구를 초대해 아버지 찾기를 벌인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아바의 노래로 풀어간 '맘마미아!'의 성공이 이례적이라 할 정도로 주크박스의 성공률은 높지 않다.

그런 이유로 기존 노래로 새로운 이야기를 전개하는 '맘마미아!'의 모델에서 벗어나 아티스트의 삶을 드라마의 소재로 삼는 작품들이 등장했다. 그룹 포시즌스의 멤버들이 만나서 성공하고 좌절을 겪으며 해체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저지 보이스'는 가수의 삶을 다룬 주크박스 뮤지컬 중 가장 성공한 작품이다. 멤버의 삶을 소재로 삼다 보니 그들의 노래가 자연스럽게 극 속에 녹아들게 된다. 주크박스 뮤지컬의 관객들은 기존 가수의 향수를 느끼려고 한다. 가수의 삶을 소재로 했을 때 반응이 더 뜨거울 수밖에 없다.

주크박스 뮤지컬 '광화문연가'는 이영훈 작곡가의 노래들로 채워졌다. 샘컴퍼니 제공

주크박스 뮤지컬 '광화문연가'는 이영훈 작곡가의 노래들로 채워졌다. 샘컴퍼니 제공

새로운 이야기를 꾸민다 하더라도 해당 가수의 이미지를 적극 극에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올 슉 업'의 주인공 채드는 자유를 전파하는 방랑자로 엘비스 프레슬리를 연상시킨다. '광화문연가' 역시 이영훈 작곡가를 연상시키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노래가 만들어진 가상의 이유를 따라간다. 심지어 새로운 이야기로 꾸민 '맘마미아!'조차도 도나의 젊은 시절 밴드의 의상이나 커튼콜 '댄싱퀸' 장면은 아바의 오마주였다. 해당 가수의 팬들이 주요 관객인 만큼 향수를 자아낼 요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 주크박스 뮤지컬 중 가장 성공한 작품인 '그날들'에서는 김광석의 노래를 사용하되, 김광석의 흔적을 찾기 힘들다. '그날들'은 김광석의 삶이나 이미지와는 전혀 무관한 청와대 경호팀에서 일어난 실종 사건을 소재로 한다. 음악 역시 원곡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편곡되기 때문에 김광석의 향수를 기대하고 온 관객이라면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청와대 경호원이라는 호기심을 자아내는 직업과 미스터리 구조는 지금의 공연 관객들의 흥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익숙한 노래는 극에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게 했다.

브로드웨이의 중심 관객은 중장년 층이다. 향수를 자극하는 주크박스 뮤지컬은 브로드웨이 중심 관객을 타깃으로 하기에 적합한 양식이었다. 그러나 국내 공연의 메인 관객은 20~30대 여성이다. 김광석, 이영훈, 신중현, 김현철 등에게 향수를 느끼는 세대가 아니다. 추억의 가요로 만드는 주크박스 뮤지컬은 지금의 공연 관객들에게 어필하는 힘이 적을 수밖에 없다. '그날들'의 선택은 이러한 공연 관객층을 고려한 것이다.

국내에서 주크박스 뮤지컬은 새로운 관객으로 외연을 넓힐 수 있는 양식이긴 하다. 주크박스 뮤지컬이 브로드웨이의 주요 트렌드이긴 하지만 젊은 관객층이 핵심 관객인 국내 공연 시장에서는 이러한 장르가 매력을 발휘할지는 따져보아야 한다. 국내 공연 시장에서 주크박스 뮤지컬은 관객의 외연을 넓힐 수 있는 가능성과 더불어 기존 공연 관객을 어떻게 끌어들여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수반되어야 한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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