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혐한의 실체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수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일본에는 정말로 혐한이 만연한가요?”
좋아질 기미가 없는 한일 관계 때문일 것이다. ‘혐한’에 대한 질문을 받는 일이 부쩍 늘어났다. 혐한(嫌韓)이란 한국 혹은 한국인에 대한 강한 편견과 혐오 정서를 뜻하는 말로, 1990년대 초 일본의 한 우익 잡지에서 공론화했다. 그때만 해도 정체가 불분명한 개념이었는데, 지금은 한일 관계의 걸림돌로 인식될 정도로 존재감이 커졌다. 지금 일본 사회에서 혐한은 명백한 사회 현상이다. 한국 사회에 대한 편파적인 비판을 담은 서적이 지속적으로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우익 정치인은 공공연한 혐한 발언으로 배타적 보수 세력을 결집하려 한다. TV 시사 프로그램에서도 고의인지 실수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혐오 발언이 곧잘 튀어나온다. 현재 일본에 혐한 정서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본 사회에 혐한이 만연하다는 뜻은 아니다. 열심히 ‘헤이트 스피치’(혐오 발언)를 규탄하는 운동을 벌이는 시민도 있고, 정부의 역사 수정주의를 적극 비판하는 세력도 있다. 인터넷이 대세가 되면서 관련 정보가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풍부해진 만큼, 한국을 보는 관점도 다양하다. 국경을 초월한 친구, 연인, 가족 등 사적 교류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었다. 한식, 케이팝, 드라마, 웹툰 등 한국 문화를 담은 콘텐츠의 인기도 상승세다. 혐한이 일본 사회의 정치적 키워드라는 점은 사실이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 사회에 대한 친밀감이 커지고 있는 것도 분명하다. ‘일본 사회=혐한’이라는 도식은 상황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다.
◇‘혐한’은 한일의 매스 미디어의 ‘캐치볼’ 속에서 무럭무럭 자랐다
한일 양국에서 혐한이라는 말의 존재감이 커진 경위에 대해서 생각해 볼 만한 구석이 있다. 이 말이 처음 등장했던 1990년대 초반 일본 사회는 한국에 대해 무지했다. 일본 제국주의 시절의 상처를 되새기는 한국인에게는 ‘일본 사회가 한국을 잘 모른다’는 사실 그 자체가 문제로도 느껴진다. 다만, 당시 일본 사회가 아시아 지역의 근린 국가에 주목하지 않았다는 것은 팩트다. 경제적, 문화적 교류가 눈에 띄게 늘어나던 미국이나 서유럽에 관심이 온통 쏠려 있었다. 그런 면에서 이 시기 일본의 혐한이 뚜렷한 사회적 현상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역시 무리가 있다. 한국에 대한 관심 자체가 옅은데 강한 혐오 정서가 생길 리도 없는 것이다.
사실 혐한이라는 단어가 먼저 언급된 것은 한국에서였다. 1992년 한국에서 방영된 TV 역사 드라마에서 일왕이 저격당하는 장면이 그려졌다. 이에 반발한 일본의 극우 세력이 요코하마의 한국 총영사관에 난입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위안부 문제가 공론화하면서 과거사를 둘러싼 한일 시민 사회의 이견이 불거지던 민감한 시기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한국의 신문은 이 사건을 대서특필하면서 “일본에 혐한 분위기가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일본의 신문들이 일제히 한국의 언론을 인용하면서 “한국에서 일본의 혐한 분위기를 우려한다”는 기사를 내기 시작했다. 국경을 넘나드는 한일 언론의 ‘캐치볼’이 이런 식으로 반복되더니 급기야는 일본의 신문에서 “국내의 혐한 분위기를 우려한다”는 사설을 게재하기에 이르렀다. 어느 사이엔가 혐한이 기정사실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한일 양국의 언론은 우려의 뉘앙스로 언급함으로써 혐오의 정서가 잦아들기를 바랐을지 모른다. 하지만, 극우 세력에게 이 상황은 오히려 세를 불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혐한을 거론할수록 사회적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혐한은 극우 세력의 단골 구호가 되었고, 이제는 그 세력이 구심이 되어 혐오의 실체를 만들어 나갔다. 예를 들어, ‘재일 한국인의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 (在日特?を許さない市民の?)’, 줄여서 ‘재특회’라고 부르는 단체는 헤이트 스피치를 일삼는 대표적인 혐한의 실체다. 이 단체가 발족한 것은 2006년. 한일 언론이 입을 모아 정체불명의 혐한을 걱정하기 시작한 지 무려 10여 년 뒤의 일이다.
1990년대 이전에도 일본 사회에 한국에 대한 반감이 일부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다. 극우 인사의 돌출적인 혐오 발언이 문제가 되곤 했지만, 이런 의견을 지지하는 특정 세력이 존재하지는 않았다. 어떤 면에서 혐한이라는 ‘유령’을 정치 세력으로 키워낸 것은 한일 양국의 매스미디어였다. 표면적으로는 이웃나라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우려하는 뉘앙스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시의적절하게 또 효과적으로 이 구호를 정치적 담론의 ‘주류’로 키워내는 디딤돌 역할을 했다. 인터넷이 대중적 영향력을 발휘하기 전, 외국의 상황은 전적으로 매스미디어의 특파원이 전하는 정보에 의존하던 시절이다. 한일의 매스미디어가 혐한을 둘러싸고 은밀하게 협력한 캐치 볼 랠리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비판을 가할 만한 주체조차 없었다.
◇한일 관계를 지배해 온 ‘혐오’를 대체할 언어 찾아야
미국의 저널리스트 월터 리프먼은 초기 매스미디어 연구에 큰 영향을 미친 사상가다. 그의 유명한 저서 <여론>(1922년)의 첫머리에 이런 에피소드가 소개되어 있다. “1914년, 망망대해에 자리한 섬마을에 영국인, 프랑스인, 독일인이 살고 있었다. 섬에는 전신 시스템이 구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주민들은 두 달에 한 번씩 오는 영국의 우편선이 전달해 주는 신문을 통해 바깥세상 소식을 들었다. 오랜만에 우편선이 도착한 날, 주민들은 ‘6주 전에 영국과 프랑스의 연합군이 독일과의 전쟁에 돌입했다’는 놀라운 뉴스를 들었다. 지난 6주 동안 섬 주민들은 평소처럼 도우며 평화롭게 생활했다. 그런데 만약 그 시간에 바깥세상에 있었다면 누군가는 누군가와 협력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총구를 겨누는 적이었을 것이다”.
리프먼은 이 에피소드를 통해 우리가 인식하는 외부 세계가 실은 매스미디어가 전달하는 정보에 의존해 재구성되는 ‘유사 환경 (pseudo-environment)’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우리가 인지하는 외부 세계는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미디어라는 렌즈를 통과하면서 일차적으로 ‘가공’된 결과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거짓이나 왜곡 속에 산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정보에 의존해서 외부 세계를 인식할 뿐 아니라, 그 인식에 근거해서 행동한다. 결국 미디어가 전달하는 정보는 그 자체로 사회적 영향력을 갖고 현실 세계를 구성하는 힘이 되는 것이다. 한일 매스미디어의 캐치볼 속에서 무시할 수 없는 정치 세력으로 진화한 혐한은 “정보가 현실을 만든다”는 ‘유사 환경’의 한 측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유사 환경’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한일 양국의 미디어가 쏟아내는 서로에 대한 정보는 여전히 위태롭기 짝이 없다. 양국에 존재하는 다양한 의견과 관점의 스펙트럼을 균형 있게 전달하려는 노력은 미미하고, 서로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자극하는 선정적 관점과 극단적 사례에 전념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미디어가 묘사하는 일본은 극우 사상과 배타주의로 얼룩진 혐오의 사회다. 반면, 일본의 미디어는 한국 사회의 ‘반일 감정’을 불필요하게 부각시켜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한다. 외교적으로는 한일 관계가 얼어붙었지만, 과거사 문제나 전쟁 시 인권유린 문제 등 한일 시민 사회가 서로 연대하고 대응할 수 있는 현안도 적지 않다. 양국의 미디어가 쉴 새 없이 토해내는 부정적인 정보가 미래지향적인 현실 인식을 가로막고 이런 가능성조차 차단하고 있지 않은지 걱정스럽다. 언어에는 기묘한 힘이 있다. 우리는 언어가 현상을 기술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일단 언어로 형상화된 현상이 거꾸로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 일이 다반사다. 혐오라는 언어가 오랫동안 한일 관계를 지배해 왔다. 이제 이를 대체할 언어의 실마리를 고민해야 하지 않겠는가?
※칼럼에서 언급한 90년대 혐한 담론의 분석은 주로 伊藤昌亮(2019) 『ネット右派の?史社??: アンダ?グラウンド平成史1990-2000年代』(?弓社)를 참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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