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2001년 9월 11일. 그날 난 미국 중부의 작은 도시에 있었다. 아픈 역사의 현장 뉴욕과 꽤 떨어진 곳이지만 그날의 충격과 공포는 한국서 온 어학 연수생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여느 때처럼 학교를 갔지만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뉴스를 통해 알 카에다, 오사마 빈 라덴, 무슬림, 테러 같은 단어들을 거듭해 들을 수록 사람들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특히 이슬람 국가에서 온 유학생들은 생각이 많아 보였다. 가장 쾌활했던 사우디아라비아 친구는 갑자기 말수가 적어졌다. 왜냐고 물으니 '무슬림=테러 집단'으로 규정하고 온갖 비난과 공격이 쏟아질 것 같아 걱정된다고 했다.
괜찮을 거야라는 내 위로의 유통 기한은 겨우 며칠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미국 정치인들은 분노 지수를 높였고, 복수를 해야 한다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보수 언론은 이를 그대로 보도하며 힘을 실었다. 일부 테러리스트를 혼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조금씩 커졌고, 어느 순간 테러 분자를 키워 낸 이슬람 사회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대학 캠퍼스의 분위기도 바뀌었다. 처음엔 희생자와 유가족을 생각하면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무슬림 전체를 향한 비판은 적절치 않다고들 했다. 하지만 다들 무슨 일 일어나는 것 아니냐며 불길해했고 마침내 우려는 현실이 됐다. 백인 남학생들이 캠퍼스 안에서 히잡을 쓴 채 걷던 여학생을 폭행하는 일이 벌어졌다.
나를 비롯해 평생 무슬림을 가까이서 접해보지 못했던 아시아 학생들은 무슬림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갖가지 유언비어를 여과 없이 사실로 받아들이는 미국인들을 어떻게 이해할지 막막했다. 그사이 평소 나이, 국적, 성별 상관없이 친하게 지내던 무슬림 친구들도 그들끼리 뭉쳐 비(非) 무슬림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키려 했다. 결국 학생들끼리도 서먹서먹해하며 거리를 두게 됐다.
아흐레 뒤인 9월 20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의회 연설에서 '테러와의 전쟁(war on terror)'을 선포했다. 특히 탈레반 정부에 대해 알 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을 넘겨줄 것을 요청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공격하겠다는 최후 통첩을 했다. 과연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방식이 적절한가, 설사 복수를 해도 납득할 만한 증거가 있어야 하지 않나 같은 목소리는 무시당했다.
부시 대통령의 전쟁 선포 뒤 어느 금요일. 사우디 친구는 내게 "네가 무슬림에 대해 조금 더 알았으면 좋겠다"며 이슬람 사원에 함께 가자고 했다. 9·11 이후 이슬람을 더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터라 망설이지 않았다.
그 친구는 "무슬림과 테러리스트는 다르다"고 했다. 그는 "미국이 왜 전쟁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지 조금 더 설명하려 했다면 더 많은 무슬림이 이해했을 것"이라며 "무슬림들도 문제를 일으키는 테러리스트를 찾아 없애는 일을 도울 수 있을 텐데"라고 아쉬워했다.
그리고 2021년. 전 세계의 테러 집단을 없애 뒤틀린 세상을 바로잡겠다던 미국은 아프간에서 철수했다. 지난 20년의 전쟁 속에서 무엇을 얻고 잃었는지를 두고 앞으로 더 많은 분석과 평가가 따르겠지만 적어도 그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리고 앞으로 수많은 목숨이 달린 전쟁 개시를 결정할 때는 무엇이 필요한지 다시금 생각하는 교훈이라도 얻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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