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비대면 소비가 활성화되면서 택배 산업이 가파르게 성장했다. 한국통합물류협회가 지난 2월 19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총 택배 물량은 33억 7,373만 개로 2019년(27억8,980만 개) 대비 20.9% 늘었다. 2020년 국민 1인당 택배 이용 횟수는 65.1회로 2019년보다 11.3회 상승했다.
양적 성장에 비해, 택배 산업 종사자의 근로환경과 처우 개선을 위한 노력은 더딘 걸음을 하고 있다. 전국택배노조는 지난 6월 9일 택배사들이 택배 종사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기한 총파업에 들어갔다. 택배업계 노사가 과로사 방지를 위한 중재안에 합의하며 일주일 만에 총파업은 중단되었지만, 온라인 쇼핑몰과 일반시민은 배송 지연 등의 피해를 감내해야 했다.
우리 국민은 택배 산업 종사자의 노동환경 개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택배노조 파업은 정당하다고 보고 있을까? 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 팀은 지난 7월 30일~8월 2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택배 산업 종사자의 노동 환경에 대한 인식과 택배노조 파업에 대한 인식을 알아보기 위한 조사를 진행했다.
최근 3개월 내 월평균 택배 서비스 이용 횟수 7.6회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들이 답한 최근 3개월간 월평균 택배 서비스 이용횟수는 평균 7.6회로, 이를 2021년 연간 택배 이용횟수로 추산해보면 91.2회로 추정된다. 대상자 수와 집계 기간이 다르기 때문에 앞서 제시한 한국통합물류협회의 자료와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겠으나, 택배 서비스 이용 빈도가 여전히 적지 않음을 보여주는 결과이다.
또한 60%의 응답자가 코로나19 사태 전인 2019년과 비교했을 때 최근 택배 서비스 이용 횟수가 늘었다고 답했고, 90%는 ‘택배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한다면 생활이 불편해질 것’이라고 답했다. 코로나19 상황이 이어지며, 택배 서비스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높아진 모습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차질 없는 택배 서비스에 고마움 느껴
코로나19 상황 속 비대면 소비로 인한 물량 공세가 더해졌음에도 차질 없이 배송이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 국민 대다수는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코로나19 사태에도 주문한 물품을 제때 받아볼 수 있어서 안심했다는 응답은 92%로 나타났고, 코로나19 사태를 어느 정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필요한 물건을 빠르게 배송해주는 택배 서비스 덕분이라는 응답은 88%였다.
택배기사의 열악한 근로환경과 처우 개선에 대해 공감도 높아
이번 조사에서 국민 대부분이 택배기사의 열악한 근로환경에 대한 인지를 충분히 하고 있고, 근로환경과 처우 개선에 대해 공감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택배기사의 높은 근로 강도에 대해 10명 중 9명이 공감하고 있었다. ‘택배기사는 힘든 직업’이라는 것에 93%가 동의했고, ‘택배기사들이 과로노동을 하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에 대한 동의 응답도 91%로 높았다.
‘택배기사에 대한 처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91%), ‘택배기사가 고생하는 만큼 그에 대한 이용료는 당연히 내야 한다’(89%)는 것에도 10명 중 9명이 동의했다. ‘택배기사의 근로시간이 과도해 줄여야 한다’는 응답도 89%, ‘택배기사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배송지연을 감수할 수 있다’는 응답도 82%로 높게 나타났다. 택배 없는 날의 필요성에 관해서도 10명 중 8명(77%)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10명 중 6명은 택배노조 파업 지지
택배노조 파업을 포함하여 최근 3개월간 이슈가 되었던 노동조합 파업 사례 4가지를 꼽아 각 파업에 대한 지지 정도를 물어본 결과, 제시한 4개 사례 중 택배노조 파업에 대한 지지도가 60%로 유일하게 과반을 넘었다. 만성적 적자로 인한 대규모 구조조정 요구에 반발한 공공기관 노조 파업(30%), 직접고용 문제로 발생한 고객센터 노조 파업(26%),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 난항에 따른 기업노조 파업(15%)에 대한 지지도는 택배노조 파업 지지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다른 파업 사례에 비해 택배노조 파업이 높은 지지를 얻은 이유는 무엇일까? 높은 택배 서비스 의존도와 만족도 바탕 위에, 국민 대다수가 택배기사의 열악한 근로환경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이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택배노조 파업의 핵심 쟁점이 바로 택배 종사자 과로사 문제에서 비롯된 근로 환경 및 처우 개선이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지난 6월 있었던 전국택배노조 총파업의 핵심 쟁점사항 3가지에 대한 찬반 여부를 물어본 결과, 3가지 쟁점 모두 찬성 비율이 80% 이상으로 나타났다. ‘분류작업(다수의 택배에서 택배기사 본인 담당의 택배와 타인의 택배를 구분하는 업무)에서 택배기사 참여를 제외하고, 택배사에서 분류 전담 인력 별도 투입 및 비용을 부담’하라는 요구와 ‘택배기사의 주 최대 작업 시간을 60시간(일 최대 12시간)으로 제한’하는 것에 각각 89%가 찬성했다. ‘21시 이후 심야 배송 제한 및 심야 배송 방지를 위한 불가피한 지연배송에 대한 책임 완화’의 쟁점 또한 찬성 응답이 86%였다.
택배노조 파업 피해를 경험한 사람들도 높은 지지
지난 6월 이후 택배노조 파업으로 인해 배송 지연, 분실, 물품 파손, 배송 착오, 물건 구입 또는 발송 불가 등의 피해를 경험했다는 응답은 22%로, 10명 중 2명이 택배노조 파업 피해를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경험한 피해 유형으로는 ‘배송 지연’이 78%로 가장 많았고, ‘물품 훼손·파손·부패 경험’(20%), ‘필요한 물건을 아예 구입하거나 발송하지 못함’(15%), ‘배송 분실’(13%), ‘배송 착오’(10%)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피해에 대한 배상 여부에 대해서는 피해 경험자 10명 중 8명(79%)이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흥미로운 점은 택배노조 파업으로 인한 피해를 경험한 사람 중에서도 61%가 택배노조의 파업을 지지한다고 답했다는 점이다. 이는 전체 응답자 결과와 비슷한 수준이다. 또한 피해 경험 여부와 관계없이, 택배 파업에 대한 책임 소재와 파업에 따른 피해의 배상 책임 소재로 택배사를 가장 많이 지목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다만, 택배노조의 행동 방식에 대한 평가는 피해 경험 여부에 따라 달라졌다. 택배노조 파업으로 인한 피해 경험자는 택배노조의 행동방식이 ‘과격하다’는 것이 46%로 다수를 차지하는 반면, 피해를 경험하지 않은 응답자는 ‘온건하다’라는 응답이 56%로 나타나 다소 엇갈린 시선을 확인할 수 있었다.
택배기사 처우 개선 위해 배송료 인상, 배송기간 지연 감수할 수 있어
택배기사의 근로환경과 처우 개선을 위해서라면 비용 인상이나 배송기간 지연도 마다하지 않고 고통을 나눌 준비가 되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택배 종사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정책이나 제도 시행으로 인한 택배비 일부 인상에 대해 응답자 10명 중 6명(61%)이 동의했다. 동의한 응답자를 대상으로 요금 인상 수용 범위에 대해 물어본 결과, 기본 택배비 2,500원 기준 20% 이내인 500원 이내라는 응답이 55%로 가장 높았고, 전체 응답자를 대상으로 물어본 적정 택배비는 평균 2,817원으로 현재 수준보다 300원가량 높았다. 배송비 인상뿐만 아니라, 택배기사 근로환경 개선과 처우 개선을 위해서라면 배송 지연을 감수할 수 있다는 응답도 78%로 나타났다.
올해 1월 26일 택배 종사자 과로사 방지법이라고 불리는 ‘생활물류서비스 산업발전법’(이하 ‘생활물류법’)이 제정되었고, 지난 7월 27일부터 본격 시행됐다. 택배업계 근로환경 개선의 법적 기반이 될 생활물류법, 그리고 지난 파업 과정에서 이루어진 택배 노사의 합의가 택배 산업 성장통의 치료약이 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택배 산업이 눈에 띄는 외적 성장만큼이나 탄탄한 내적 성장으로 거듭나서 국민이 불편을 감수하며 고통을 감내하는 극단적인 상황이 없도록 만들어주기 바란다.
민성혜 한국리서치 여론2본부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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