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관찰 프로그램이 어느새 예능 시장 한복판에 자리를 잡았다. 특히 부부 갈등과 육아 문제를 다룬 예능들이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 측면에서 많은 주목을 받는다. 다만 높아진 인기와 함께 최근 우려의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는데, 바로 이 프로그램들이 결혼 생활과 양육의 어두운 면만을 집중 조망하여 사회적 문제인 비혼과 저출산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팀은 지난 10월 25~28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대중이 부부 갈등 및 육아 문제를 다룬 프로그램과 비혼·저출산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조사를 시행했다.
부부 갈등 및 육아 프로그램, 결혼 출산 육아에 대다수가 부정적 영향 응답
일반인의 부부 갈등과 육아 문제를 다룬 프로그램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는 어떨까? 먼저 부부 갈등 프로그램의 경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 46%,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 37%로 긍정 평가가 높다. 반면, 육아 문제 프로그램은 긍정적 평가 30%, 부정적 평가 52%로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더 많다. 프로그램에 따라 평가가 갈리기는 해도 어느 한 방향으로 극단적으로 치우치지는 않았다.
그런데 두 프로그램이 결혼 의향에 미치는 영향을 물었을 때는 전반적 평가와 무척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부부 갈등을 다룬 프로그램이 결혼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평가하는 사람은 16%에 불과한 데 반해,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사람은 64%로 차이가 4배에 달한다. 육아 문제를 다룬 프로그램은 긍정적 영향 9%, 부정적 영향 73%로 차이가 더욱 크다.
출산 및 육아에 대한 생각 역시 마찬가지이다. 부부 갈등 프로그램(긍정적 영향 15%, 부정적 영향 67%), 육아 문제 프로그램(긍정적 영향 9%, 부정적 영향 72%) 모두 출산 및 육아에 대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이 높음을 확인했다.
특히 40대 이하 청년·중년층에서는 50대 이상에 비해 이들 프로그램들이 결혼이나 출산·육아 생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의견이 높다. 실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연령대에서 부부 갈등과 육아 문제 프로그램을 더욱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일반인 부부의 갈등과 육아 문제를 다룬 프로그램이 결혼과 출산·양육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는 현실 왜곡이다. 사람들은 방송에서 보여지는 문제와 갈등에는 과장된 부분이 적지 않다고 인식한다. 현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0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10점이라고 했을 때 대중이 매긴 현실 반영 점수는 부부 갈등 프로그램은 4.9점, 육아 문제 프로그램은 5.1점이다. 방송이 현실을 일정 수준 반영하고 있기는 하지만 반대편에서 보면 그만큼의 거짓이 섞였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방송을 통해 부부 갈등, 육아 문제 해결이 가능할까? 대답은 NO
이러한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일반인 출연자의 1차적인 목적은 바로 본인이 직면한 문제의 해결이다. 그렇다면 과연 방송을 통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방송을 보는 이들의 다수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방송 프로그램에서 보여지는 부부 갈등이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고 보는 사람은 22%이며, 53%는 해결이 안 된다고 본다. 육아 문제 또한 28%만이 방송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반면, 47%는 해결될 수 없다고 평가한다.
사람들은 출연자들이 직면한 문제가 단기적인 상담 혹은 조언으로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본다. 또 프로그램 분위기나 흐름이 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 않아서, 즉 출연자의 어려움을 해결하려 한다기보다는 방송 그 자체가 목적인 것처럼 보여서라는 의견도 있다.
방송 출연자를 향한 시선에 의심도 섞여 있다. 현재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움이나 조언이 필요해서, 혹은 힘든 상황에 대한 공감과 위로를 얻기 위해 방송에 출연한 것으로 보인다는 응답도 많지만, 홍보나 출연료 등 개인적 이익을 얻기 위해, 또는 대중의 주목을 받고 싶어서 방송 출연을 결정한 것이라 보는 입장도 적지는 않다.
방송의 현실 왜곡, 문제 해결 가능성 부족, 출연자의 출연 동기 불신 등 여러 한계는 부부 갈등 및 육아 문제 프로그램에 대한 흥미를 떨어트린다. 이들 프로그램이 지금보다 줄어들었으면 한다는 응답이 각각 46%(부부 갈등 프로그램), 58%(육아 문제 프로그램)이다. 축소를 주장하는 주된 이유는 해당 프로그램들이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이어서’이다. 앞서 얘기한 ‘과도한 설정이나 편집’으로 현실을 왜곡하는 문제를 지적한 경우도 적지 않다. 반대로 프로그램 확대를 희망한다는 의견은 10명 중 1명도 채 되지 않는다.
미디어가 사회 현상에 미치는 영향력의 크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할 수 있으나,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만큼은 모두가 수긍하는 바이다. 그러하기에 우리가 일상에서 가볍게 접하는 방송 프로그램이라 할지라도 사회에 불러올 파장을 섬세하게 고려해 다루어져야 하고 결과에 대한 책임도 나눠가져야 한다.
일례로 자살이 무분별하게 미디어를 통해 노출되었을 때를 생각해 보자. 유명인의 자살을 모방 시도하는 현상이 일어나거나 사회적으로 자살을 가볍게 여기는 분위기 형성되었던 것은 그리 오래전 얘기가 아니다. 이러한 파급력이 있기에 언론은 자살예방 보도준칙을 마련하는 노력을 하고, 드라마나 예능에서도 자살 장면에 대한 묘사를 지워나가는 것이다.
저출산과 비혼 문제도 같은 맥락일 수 있다. 2023 자살실태조사에 따르면, 미디어(보도 제외)의 자살 관련 표현이 자살 시도를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고 한 경우는 55.5%이다. 조사 시점이나 방법이 달라 직접적인 비교가 어렵다 하더라도, 일반인의 부부 갈등과 육아 문제를 다루는 프로그램들이 결혼·출산·육아 생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응답이 60~70%대였던 점을 고려한다면 미디어가 저출산과 비혼 문제에 초래할 부정적 효과는 어쩌면 자살의 경우보다도 더 클 수 있다.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0명대 합계출산율을 기록하고 있고 남녀 대립과 갈등이 고착화되어 가는 작금의 대한민국 상황을 감안하면, 방송 프로그램은 기획과 연출부터 편집까지 모든 과정에서 사람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지 않도록 보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대부분의 에피소드에서 금쪽이에게 필요한 솔루션은 부모님의 관심이었듯, 예능 프로그램도 그것이 미칠 영향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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