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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미군의 아프간 철수 실패를 보여주는 통계가 추가됐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가 4월 이후 36차례 회의를 열어 철군을 논의한 사실이다. ‘36’은 바이든 정부가 얼마나 신중하게 결정을 했는지 보여주려 공개한 숫자다. 그러자 불똥이 NSC의 관료주의로 튀었다. 칼럼니스트 파리드 자카리아는 이를 근거로 외교안보 결정조직이 공룡이 됐다고 비판했다. NSC가 거대한 몸집에 작은 뇌의 공룡처럼 프로세스 자체가 정책이 돼버린 관료주의에 빠졌다는 것이다.
□ NSC는 대통령 참모조직이 아니라 여느 기관처럼 비대해져 있다. 냉전이 한창일 때만 해도 헨리 키신저는 직원 50명으로 NSC를 움직였다. 냉전 종식 이후 현안이 다양해지면서 100명으로 늘어났으나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한 부시 정부는 두 배, 오바마 정부는 다시 두 배로 규모를 키웠다. 트럼프 정부에서 잠시 축소됐지만 바이든 정부는 반도체 패권과 기후변화 문제까지 맡겨 350~370명으로 재확대했다. 그러나 조직이 커지며 결재 단계는 많아졌고 부작용은 점점 분명해졌다.
□ 무엇보다 정보가 내부에서 생산되면서 외부 의견은 스며들 틈이 없게 됐다. 아프간 군이 실체 없는 ‘유령군인’이란 경고음도 한두 번 울린 게 아니다. 아프간재건특별감찰관은 작년 3월 보고서에서 아프간 군은 “달러와 하청업자들이 없으면 버티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마이클 오핸런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매년 아프간 군 20~30%가 이탈하고 있다고 했다. AP통신은 아프간 군은 30만 명이 아니라 12만 명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7월에는 카불 미 대사관 직원 20여 명이 철군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외교전문까지 보냈다고 한다.
□ 외부의 이런 경고음은 관료주의 벽을 뚫지 못했다. 낙관 일색인 그들만의 아프간 상황은 이번 사태로 폭로될 때까지 계속됐다. 마크 밀리 합참의장은 아프간 정부의 실패를 예상하는 정보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고립된 내부 정보만 신뢰한 바이든 정부로선 내부의 적에 패한 것이다. 누구보다 외교안보에 식견을 갖춘 바이든 대통령은 외교안보 드림팀을 출범시킨 바 있다. 그런 점에서 아프간 사태는 자기 편향의 덫에 빠진 드림팀과 NSC 관료주의의 합작품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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