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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과 함께 저무는 이준석 현상

입력
2021.09.07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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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당선 이틀 뒤인 6월 13일 오전 따릉이를 타고 국회로 출근하고 있다. 뉴시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당선 이틀 뒤인 6월 13일 오전 따릉이를 타고 국회로 출근하고 있다. 뉴시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얼마 전 당 대선후보 경선을 앞두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 원희룡 전 제주지사 등 후보들과 신경전을 벌였다. 전여옥 전 의원은 이런 그가 “맹랑하고 영악하다”고 했다. 이 문제로 수세에 몰렸던 이 대표가 딱했는지 당내 분란이 수습 국면에 들어갈 무렵 이언주 전 의원이 격려라며 한마디 보탰다. “이 대표가 ‘모처럼’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보수언론과 국민의힘이 우쭈쭈 해주니 세상이 그리 만만해 보이냐”라고 이 대표를 거칠게 몰아세운 사람도 있다. 김진애 전 의원이다.

대선 앞 당대표는 동네 북 신세라고 하지만 이 대표에게 사용된 표현이 예사롭지 않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대선을 앞두고 당 안팎의 공격을 받는다. 하지만 86세대인 그를 “맹랑하다”고 지적하는 목소리는 상상하기 어렵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노회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영악하다”는 소리는 듣지 않았다.

이 대표의 36세라는 나이에 대한 업신여김이 전여옥 전 의원 등의 발언에 녹아 있었던 건 아닐까 곱씹어보게 되는 이유이다.

6월 이 대표가 당선됐을 때만 해도 해사한 얼굴로 따릉이를 탄 제1야당 리더의 등장에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거의 없었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제 우리가 노쇠한 꼰대 정당이 됐다”면서 전전긍긍했다. 국민의힘은 오디션으로 20대 당 대변인을 뽑았다. 청년 정치인의 가능성이 주목받으며 40세 이후부터 대통령 피선거권을 주는 현행 헌법 조항을 고치자는 주장이 여야에서 분출했다.

하지만 청년 정치의 호시절은 한여름 밤의 꿈처럼 저물고 있다. 이 대표가 주춤하자 기다렸다는 듯 나이와 연결 지어 공격하는 모습들을 보자면 ‘꼰대’로 비칠까 봐 표는 안 냈지만 청년을 내심 낮잡아봤던 기성 정치인의 반격이 시작된 것 같다.

문정복(왼쪽)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류호정(오른쪽) 정의당 의원이 5월 13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배진교 의원의 박준영 해수부 장관 후보자 관련 발언 내용을 두고 언쟁을 벌이고 있다. 오대근 기자

문정복(왼쪽)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류호정(오른쪽) 정의당 의원이 5월 13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배진교 의원의 박준영 해수부 장관 후보자 관련 발언 내용을 두고 언쟁을 벌이고 있다. 오대근 기자

프랑스나 핀란드, 뉴질랜드처럼 30대 대통령 또는 총리를 배출한 나라들은 참신하다고 하면서 정작 눈앞의 청년은 ‘애들’ 취급하는 정치권의 이중적 시선은 여전해 보인다. 5월 국회 본회의장에서 54세 문정복 민주당 의원은 같은 초선인 29세 류호정 정의당 의원과 말다툼 끝에 꾸지람을 했다. “야! 어디서 지금 감히 목소리를 높여.”

이준석 리더십이 꼭 정답은 아니듯 청년 정치인을 무조건 ‘우쭈쭈’ 해줘야 하는 건 아닐 것이다. 그래도 의원 평균 나이 55세인 국회에 청년 정치인이 지금보다 더 존중받고 많아져야 할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기후 변화나 공적연금 기금 소진처럼 20~30년 뒤 본격적으로 문제가 될 일에는 절박함이 덜한 정치권 모습을 보면 미래 당사자들에게 더 큰 발언권이 필요하다.

39세인 이동학 민주당 최고위원은 최근 당 대선주자들에게 2050년대로 전망되는 국민연금 기금 소진의 문제를 해결할 연금개혁 공약 마련을 요구했다. “언제까지 청년 세대에게 자신들이 받지도 못할 돈을 계속 내라고만 할 것인가”라고 일침을 놓으면서다.

“최악의 상황은 지금 결정을 해야 할 베이비붐 세대의 기성 정치인들이 결정을 뒤로 미루고 그대로 노년이 되어 은퇴하는 것이다. 그들이 가장 큰 세대 집단이 되어 거대한 연금 수호 기득권 세력으로 뭉친다면, 눈앞이 캄캄하다.”

그의 물음에 평균 연령 62세인 민주당 대선주자들은 어떤 답을 할까.

이성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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