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기자로 산다는 건 종종 꽤나 부담스러운 일이다. 사실과 현상, 분석 같은 글만 쓰면 좋으련만, 주제 넘게 누군가를 평가하고 깎아내리거나 세상에서 가장 올바른 생각을 하는 사람인 양 '~해야 한다'는 문장으로 점철된 훈계성 글도 써야 한다. 조금은 비뚤어지고 미숙하며 부족한 사람으로서 주제 넘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이 막강해지면서 요즘엔 그 안의 세계를 들여다보며 비슷한 피로감을 느낀다. 세상의 온갖 사안에 대해 정치적으로 올바름을 설파하는 이들이 넘쳐난다. 우리 사회가 상대적으로 뒤처진 분야인 양성평등이나 성소수자, 종교, 포용주의, 동물권, 기후문제 같은 이슈에서 특히 그렇다.
일례로 최근 화제가 된 ‘SNL 코리아’의 ‘인턴기자 주현영’을 여혐 프레임으로 몰아세우며 ‘세상 모든 여성을 무능하다고 싸잡아 비하했다’고 주장하거나, 성적인 코드의 코미디를 한 개그우먼 박나래를 파렴치한 성추행범으로 낙인찍는 식이다. 이들은 요즘 가장 뜨거운 문화 콘텐츠인 ‘오징어 게임’에서도 여지없이 여혐 코드를 끄집어내며 심각한 결함이 있는 것처럼 평가절하한다.
물론 이러한 주장에 깔려 있는 올바름까지 부정할 만큼 비뚤어진 건 아니다. 다만 걱정되는 건 근본주의적이고 경직된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함’이다. 종차별적 언어를 바꾸자면서 지금 바로 사고 체계와 언어 체계를 뜯어고치자고 하면,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온갖 식물을 학대·착취하는 죄책감까지 안고 살아야 하는 걸까.
미국에선 이미 1990년대부터 독선적 PC함에 대한 부정적 정서가 커지고 있다. 최근 들어선 '블랙 라이브스 매터(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나 '미투' 운동 이후 특히 심해졌다. 흑인인권운동가들과 정치적으로 예민한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시작한 '워크(Woke·정치적으로 깨어 있는) 문화'와 '캔슬(Cancel·취소라는 원래 뜻보다는 지지 철회, 배척, 사회적 매장, 보이콧 등을 의미) 문화'는 이제 일반적인 현상이 됐다. 이에 대해 반감이 커지는 건 의도 자체가 싫어서가 아니다. 아무도 불편하게 해선 안 된다는 무결성에 대한 요구,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정의를 외치는 모순, 대화를 거부하고 자신의 의견만 주장하는 태도와 자세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선 워크·캔슬 문화가 문화·예술계까지 침투하는 분위기다. 지난달 초 캐나다에선 '탱탱'과 '아스테릭스' 같은 프랑스의 대표적 문화 작품들이 인종차별이나 성차별 등 편견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퇴출당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이 일었다.
문화·예술계를 취재하면서 연예인들과 예술가들이 워크·캔슬 문화에 무릎 꿇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말 한마디 잘못하면 매장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근본주의적 PC함이 세를 확장하면서 TV 코미디 프로그램은 사실상 멸종 위기에 처했다. 아무도 불편하지 않게 하면서 어떻게 코미디를 하란 말인가. '오징어 게임'에서 논란이 된 부분을 모두 지워 버리면 더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을까.
나는 문화·예술계 창작자들이 PC에 매몰되지 않고 좀 더 도발적인 작품을 만들기 기대한다. 문화 창작은 이상을 그리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반영하기 위해서도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차라리 덜 PC한 방식으로 소통하고 대화하는 것이 독선적인 PC보다 낫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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