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해운법 개정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논란은 지난 5월 공정거래위원회가 한-동남아 항로에서 23개 국내외 선사들이 15년간 부당한 운임담합을 해왔다는 내용의 심사보고서를 발송하면서 본격화됐다.
선사들은 해운법 제29조가 공동행위를 허용하고 있고, 외국에서도 이를 허용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공정거래법 적용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반면 공정위는 선사들의 공동행위가 해운법상 요건을 어느 하나 충족하지 못한 불법적인 것으로, 해운법과 무관한 공동행위이므로 공정거래법이 적용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논란 속에 지난 7월 선사 간 공동행위에 대해 공정거래법 적용을 전면 배제하는 해운법 개정안이 발의됐는데, 개정안은 다음 몇 가지 측면에서 매우 심려스럽다.
첫째, 개정안이 통과되면 운임인상을 위한 선사들의 불법적인 담합까지 조장될 수 있어 화주인 수많은 수출입기업들의 물류비 부담이 가중되고 궁극적으로 소비자후생까지 감소할 우려가 크다. 외국선사들이 담합을 통해 국내 수출입기업들에 피해를 주더라도 공정거래법상 제재가 불가능한 상황을 초래하게 된다.
둘째, 개정안은 국내 유사 입법례와 배치된다. 항공사업법, 보험업법 등에서도 산업적 특수성을 이유로 엄격한 요건하에 합법적인 공동행위를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으나, 불법적인 공동행위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을 적용해왔다. 실제로 그간 공정위는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항공사들의 운임담합이나 보험사들의 서비스 유료화 담합에 대해 공정거래법을 적용해왔고, 법원도 일관되게 공정거래법 적용이 적법하다고 인정했다.
셋째, 글로벌 스탠더드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선사들의 공동행위를 허용하는 상당수 국가들도 엄격한 요건하에서만 공정거래법 적용을 면제하고 있을 뿐 이를 벗어난 불법적인 공동행위까지 공정거래법 적용을 면제하는 국가는 찾아볼 수 없다. 나아가 EU는 2008년 운임담합에 대한 공정거래법 적용면제를 폐지하고 컨소시엄, 얼라이언스 등 운임담합이 제외된 협정만을 허용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공정위가 사건을 처리하고 있는 와중에 이를 무력화하기 위해 사후적으로 법률을 개정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고 바람직하지 않다. 이번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개별법에 적용제외 규정을 도입함으로써 공정거래법 적용을 배제하려는 제2, 제3의 입법이 확산될 우려도 있다. 그럴 경우 그간 어렵게 발전시켜온 우리나라 시장경제는 커다란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번 해운법 개정은 해운업계뿐 아니라 우리나라 공정거래법 집행과 경쟁정책, 국민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에 해운업계의 이익만을 고려하기보다는 공정위·해수부 등 유관부처와 화주, 소비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 신중히 검토돼야 할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