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바둑에서 복기는 기본이다. 앞선 대국 가운데 나왔던 패착의 반복을 피하기 위한 필연적인 수순이다. 바둑기사들이 복기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는 이유다. 그래야만 정글의 법칙으로 이뤄진 반상의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어서다.
최근 한 달 넘게 전국을 강타한 ‘요소수 대란’이 서서히 봉합된 분위기다. 품귀 현상이 빚어지면서 대혼란 속으로 빠져든 가운데 정부에서 뒤늦게 나선 결과다. 사실, 경유 차량엔 필수품인 요소수 대란은 사전 차단이 가능했다. 국내 요소수 수입의 상당한 물량을 책임졌던 중국으로부터 약 2개월 전, 반입 금지 방침이 전달됐기 때문이다. 요소수 주원료로, 석탄에서 주출해 온 요소의 수급에 어려움을 자초한 중국 내 사정이 불똥으로 튄 여파였다. 격화한 미·중 패권전쟁 속에 중국이 미국 측의 대중 압박에 동참한 호주로부터 석탄 반입을 금지하면서 빚어진 후폭풍이다.
문제는 중국 측의 이런 사정에서 파생된 경고에 안이하게 대처한 정부였다. “관리됐던 품목이 아니어서 중국 정부가 요소수 품목을 수출 제한한다고 했을 때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게 당시 상황을 떠올린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의 답변이다. 한 나라에만 주로 의존해 온 제품이 관리 품목이 아니였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요소수 부족으로 난리가 나서야 대응하게 됐다고 덧붙인 산업부 관계자 대답에선 실소만 나온다. 사태 파악도 어설펐던 정부는 지난달 초에야 대책회의를 소집하면서 또다시 고질적인 늑장 대응만 연출했다.
더 큰 문제는 요소수 대란과 유사했던 사례를 이미 겪었다는 데 있다. 2019년, 전략물자인 불화수소의 북한 유출 의혹을 터무니없이 제기하면서 한국에 수출까지 금지했던 일본발 불화수소 사태는 여전히 악몽으로 남아있다. 반도체 핵심 소재인 불화수소의 대부분을 일본으로부터 들여왔던 상황에서 불거진 수모였다. 일본 측의 억지 논리에 휘둘리면서 새겨진 쓰라린 기억이다.
요소수 사태에 대해서도 일본에 호되게 당했던 2년 전에 이미 세밀한 진단을 통해 간파했어야 했고 대비책까지 세웠어야 맞다. 해외 의존도가 절대적인 품목에 대해선 국내 자체 생산이든, 해외 수입선 다변화든, 어떤 형태로든 대응책을 마련해야 했단 말이다. 복기는 가로와 세로, 각각 19줄로 그려진 반상 운영에서도 필수다. 하물며 국가를 책임진 정부에서 기본적인 복기조차 등한시했단 사실은 간과할 순 없다. 그런 일을 제대로 하라고 국민이 정부에 바치는 게 혈세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에서 값싼 요소수로 나라 전체가 휘청댔단 현실에선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 와중에 요소수 사태와 관련, 지난달 10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비싼 수업료를 냈다고 생각한다”며 “늦었지만 정부가 굉장히 빨리 움직여 단기간에 대응을 잘했다”고 전해진 청와대 관계자의 발언은 놀라울 따름이다. 정부의 패착에 대한 비싼 수업료를 국민에게 떠넘기면서 나온 자화자찬성 평가엔 티끌만큼도 동의하긴 어렵다.
그나마 지난달 26일 “제2의 요소수 사태를 막겠다”며 국내 반입 제품 가운데 대외의존도가 높은 4,000여 개 품목을 모니터링하겠다고 밝힌 정부의 조기경보시스템(EWS) 가동 소식을 위안거리로 삼아야 할 판이다. 하지만 EWS를 이번엔 믿어도 될 지, 솔직히 의문이다. 이미 두 번이나 피해를 봤던 국민의 눈높이에선 너무나 당연하고 합리적인 의심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