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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거와 대림시기

입력
2021.12.12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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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바티칸의 성베드로 광장에서 9일(현지시간) 구유 장식과 크리스마스 트리가 언론에 사전 공개되고 있다. 구유 장식은 남미 페루의 우안카벨리카 지역에서 제작해 공수된 것이다. 바티칸시티=AP 연합뉴스

바티칸의 성베드로 광장에서 9일(현지시간) 구유 장식과 크리스마스 트리가 언론에 사전 공개되고 있다. 구유 장식은 남미 페루의 우안카벨리카 지역에서 제작해 공수된 것이다. 바티칸시티=AP 연합뉴스

요즘 절에 가면 스님 얼굴 보는 게 쉽지 않다. 음력 10월 15일부터 이듬해 1월 15일까진 동안거에 들어가는 승려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 기간 스님들은 거처에서 꼭꼭 문을 닫고 참선을 중심으로 한 수행에만 전념한다. 원래 인도에서 석가모니와 제자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설법을 했는데 우기엔 이동 시 땅속에서 나온 벌레들을 밟아 죽일 수도 있어 이를 피하려고 한 게 유래라고 한다. 스님들은 90일이 지나 동안거에서 해제될 때까지 새벽부터 일어나 정좌한 채 스스로를 돌아보며 엄격한 묵언수행을 실천한다. 매일 14시간 이상 정진해야 하고, 공양 식사는 하루 한 끼만 허용된다. 필요하지 않은데도 가지려고 애쓰거나 집착하고 있는 건 없는지도 살핀다. 마지막 날엔 참회 의식도 치른다.

□ 천주교와 기독교에선 이맘때를 대림시기, 강림절이라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기 전 4주간을 일컫는다. 단순히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라 성탄을 제대로 맞이하기 위한 준비와 기도를 한다. 연말이라 들뜨기 쉬운 때 잠시 멈춰 마음을 차분히 한 뒤 스스로를 돌아본다. 해묵은 감정은 털어내고 지인과 이웃에게 감사를 전할 선물도 챙긴다. 엉뚱한 곳에 스트레스를 푼 일은 없는지 반성하고 내면의 소리에도 귀 기울인다. 모든 이를 소중하게 대하면서 나를 사랑하는 것도 소홀하지 않는다. 항상 긍정적인 이야기를 나누면서 미소 짓기 위해 노력한다.

□ 겨울엔 자연도 적막하다. 산속 동물들도 겨울잠에 들어간다. 나무들도 철학의 시간을 갖는다. 꽃과 잎을 모두 떨군 채 벌거벗은 실존과 마주한다. 찬바람이 불어 더 명징해진 밤하늘의 별들도 명상에 잠긴다.

□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로 세상이 시끄럽다. 위드 코로나가 아니라 도로 코로나다. 오랜만의 약속들이 미뤄지는 건 아쉽다. 하지만 종교를 떠나 나만의 동안거나 대림시기를 가질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고 스스로를 성찰하며 차분하게 연말연시를 보내기엔 어쩌면 딱 어울리는 때다. 우리 조상들도 섣달엔 부뚜막이나 장독대에 정화수를 올리고 초를 켠 뒤 온 가족의 건강을 빌며 송구영신하지 않았던가. 코로나 동안거 해제까진 시간이 더 필요하다.

박일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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