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우리 국민 10명 중 7명은 주 1회 이상 돼지고기를 먹는다. 농촌진흥청이 성인 남녀 1,500명을 조사한 결과다. 그래도 중국인의 돼지고기 사랑을 따라갈 순 없다. 하루 세 끼 중 적어도 한 끼 이상 돼지고기 요리를 즐긴다. 전 세계 돼지의 절반이 중국에서 소비된다. 대만 사람들도 돼지고기를 좋아하긴 마찬가지다. 달콤 짭조름한 대만식 돼지고기 덮밥은 서민 대표 음식이다. 그런 대만에서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 문제를 놓고 최근 국민투표가 치러졌다.
□ 미국에선 돼지를 사육할 때 락토파민(Ractopamine)을 사료에 섞어 쓰고 있다. 락토파민은 지방은 줄이고 살코기의 양을 늘리는 데 효과가 큰 성장 촉진제다. 그러나 일정 기준을 초과하면 심박동이 증가하고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등 인체에도 유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유럽연합과 중국, 러시아 등 150여 개국에선 락토파민 함유 사료를 금지하고 있다. 반면 미국, 캐나다, 일본 등에서는 합법이다. 우리나라는 락토파민 잔류 허용 기준치를 두고 미국산 돼지고기를 수입하고 있다.
□ 대만은 원래 락토파민 돼지고기 수입을 금했다. 그러나 중국의 위협에 맞서고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서둘러야 하는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이를 풀어달라는 미국의 요청을 무시하기 힘들었다. 결국 지난해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을 허용했고 야당이 이를 문제 삼으면서 국민투표까지 갔다. 차이 총통은 투표 직전 “한국도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을 허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투표 결과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을 51%가 지지, 미국 편에 선 차이 총통은 재신임을 받았다. 사실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은 지금의 야당인 국민당도 과거 집권 시 추진했던 정책이다.
□ 대만에선 우리나라 사례까지 이슈가 됐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선 락토파민 미국산 돼지고기의 안전성 문제가 제대로 다뤄진 적이 거의 없다. 잔류 기준치 이하면 정말 무해한 것인지 궁금하지만 명쾌한 설명은 찾기 힘들다. 광우병 파동을 겪은 터라 또다시 정치적 공방이 재연되는 건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과학에 근거한 안전성 검증과 철저한 검역은 필요하다. 올해 우리나라의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량은 무려 12만 톤도 넘었다. 수입 돼지고기 중 1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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