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막을 내린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박람회 ‘CES 2022’에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인공지능(AI) 로봇 개 '스팟'과 함께 등장했다. 스팟을 "동반자(Companion)"라고 소개한 정 회장은 "언젠가는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듯 스팟을 데리고 다니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로봇과 함께 사는 시대가 온다는 의미이자, 로봇 없이 살기 어려운 시대가 될 거란 얘기다.
현대차가 인수한 로봇 전문업체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작품 스팟은, 지난해 11월 국내 전력발전 신기술 행사인 '빅스포'에서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다. 당시 한국전력의 변전소 순시 점검 로봇으로 소개된 스팟을 마주한 참석자들은 BTS 곡 '퍼미션 투 댄스'에 맞춰 춤을 추거나, 4족 보행으로 전시장 곳곳을 누비는 기능을 실제로 보며 정 회장이 언급한 '로봇의 일상화'가 그리 머지않았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AI 로봇의 놀라운 진화를 현장에서 목격한 참석자 중 상당수는 박수를 아꼈다. 일단 "신기하다"는 반응 속에 대부분 사진과 동영상을 남겼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곳곳에서 "무섭다"는 얘기가 오가기 시작했다. 대형견과 비슷한 체격에, 튼튼한 관절, 놀라운 점프력, 빠른 반응 속도까지는 잘 길러진 사냥개 정도로 여길 수 있겠으나, 어디까지 진화할지 모를 지능을 갖출 수 있다는 게 두려움의 포인트였다.
"쟤(스팟)가 날 공격하면 무조건 질 것 같다"는 고교생부터, "사무실 돌아다니며 직원들 일하는 태도를 감시할 수도 있겠다"는 기업 관계자까지, 무궁무진한 스팟의 발전 가능성이 되레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한 모습이다.
이들이 신기술에 박수를 아끼게 된 건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경험한 AI 고도화의 '나쁜 예'가 실제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져 왔던 탓이다. 약 1년 전 사회적 문제로 번진 '이루다 사건'이 대표적이다. 스캐터랩이 이용자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수집해 AI 챗봇을 개발하고, 이렇게 탄생한 ‘챗봇’ 이루다가 차별과 편향성을 쏟아내 충격을 안겼다.
쿠팡 물류센터 및 배송 근로자들이 '쿠파고(쿠팡+알파고)' 통제 속에 움직이는 모습도 AI 도입을 서두르는 산업계에 묵직한 과제를 안겼다. 근로자의 성별, 연령에 따른 특성 따위는 쿠파고에 무의미하다. 기업은 이런 쿠파고에 껄끄러운 작업 지시를 맡김으로써 도의적 책임을 피해가며 배를 불린다. 국내 AI 윤리 제도가 3년 전 강제성 없이 마련된 방송통신위원회 '윤리원칙'에 머물러 있는 사이 스캐터랩은 스스로 'AI 윤리'를 강조하며 이루다의 복귀를 알렸고, 쿠파고는 여전히 ‘로켓 배송을 위해 인간을 쥐어짜고 있다.
두 달 전 유네스코는 프랑스 파리 본부에서 193개국의 만장일치로 ‘AI 윤리 권고’를 채택했다. 여기엔 사회적 신용 점수제(Social Scoring)와 대중 감시(Mass surveillance)를 목적으로 AI 기술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AI 기술이 인권이나 기본적 자유를 침해해선 안 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AI 윤리에 관한 국제 표준이 마련된 만큼, 이미 AI 자본주의의 과속과 탈선을 경험한 우리 정부도 AI 개발 지원과 함께 강제성 있는 윤리 제도를 동반할 때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