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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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감히 비서관이 모시던 주군을 제치고 대통령 후보에 출마하느냐.'
지난달 인터뷰로 만났던 기본소득당의 용혜인 의원은 같은 당 오준호 대선 후보의 출마를 알리는 기사에 이런 '악플'이 달렸다고 전했다. 출마 직전까지 용 의원의 비서관이었던 오 후보의 이력에 분노한 누리꾼의 사자후였다. 지위고하가 명백하건만 의원님이 아닌 보좌진이 당을 대표해 대선 후보로 나선 상황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던 모양이다.
아닌 게 아니라 왜 의원이 나서지 않고 비서관이 출마의 총대를 멨을까.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기본소득당은 후보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대통령으로 선거될 수 있는 자는 '선거일 현재 40세에 달하여야 한다'라는 헌법 조항에 발목이 잡혔다. 청년이 다수인 기본소득당은 당원의 평균 연령이 20대 후반이라 40세가 넘는 이 자체가 드물었던 탓이다. 용 의원도 1990년생으로 마흔에 한참 모자란 나이다. 기본소득에 '진심'인 데다 마침 마흔도 넘은 오 후보가 없었더라면 원내 정당임에도 대선 후보를 내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국회의원의 경우 지난해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만 18세 이상이라면 누구나 후보가 될 수 있다. 이전까지는 18세가 되면 투표권은 생기지만, 피선거권은 25세라 청년의 정치적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 법을 고치게 됐다. 그러나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 피선거권은 1965년 이후 꿈쩍도 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낸 개헌안에도 연령 제한을 없애는 내용이 들어갔고, 각 정당에서도 잊을 만하면 이를 제안하지만 반짝 관심에 그칠 뿐이다.
하필이면 40세가 되어야만 대통령 출마 자격이 생기는 근거도 마땅치 않다. 불혹이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고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의미라지만 그 나이가 된다고 세상만사에 엄청난 통찰력이 갑자기 생기지는 않는다. 실제로 미국·브라질·멕시코 등은 35세, 일본은 30세(참의원 기준), 프랑스는 18세 등으로 국가 정상의 피선거권 연령은 각기 다르다. 일각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 때 연령 기준이 생긴 사실을 두고 정치적 대항마로 부상하던 30대 정치인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해석한다.
대통령 선거에는 매번 다양한 후보가 나온다. 대선은 여성, 노동자, 종교 등에서 자신의 집단을 대표해 국민에게 이해관계를 알리고 지지를 호소하는 기회의 장이다. 40세 이하 청년, 혹은 18세 '급식이' 고등학생이라고 그러지 못할 이유는 없다. 연령 제한을 낮춘다고 당장 18세 대통령이 탄생하지도 않는다. 어려서 그 후보가 미덥지 않다면 뽑지 않으면 된다. 국민의 선택지가 넓어질 뿐이다. 또 서구권에서는 40세 이하 정부 수반이 그리 드물지도 않다.
이쯤에서 다른 의문도 고개를 든다. 정치인이 너무 젊어서는 안 된다면 '정년'도 마땅히 있어야 하지 않나.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2017년 진행한 조사에서 선출직 공직자 정년 제한에 '찬성한다'는 의견은 절반이 넘는 54.7%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물론 개인적으로 정치인의 정년 제도에 찬성하지 않는다. 나이가 지나치게 많다고 정치를 못하도록 하는 일이 불합리하듯 지나치게 적다고 대통령 출마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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