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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의 공포를 악용한 범죄자

입력
2022.02.04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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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사보타의 사보타주

1998년 6월 독일 최악의 고속철 참사로 기록된 '에세데 탈선사고' 현장. railpol.eu

1998년 6월 독일 최악의 고속철 참사로 기록된 '에세데 탈선사고' 현장. railpol.eu

1998년 12월 독일 국영 철도회사 도이체반(Deutsche Bahn)으로 한 통의 협박 메일이 왔다. 회사가 정리해고한 노동자들을 대표한다고 밝힌 협박범은 철도 선로 파괴 등 사보타주를 감행할 것이라며 사고를 피하려면 1,000만 마르크(약 500만 달러)를 준비하라고 썼다. 고속철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된 '에세데(Eschede) 탈선 사고'가 빚어진 지 불과 6개월 만의 일이었다.

그해 6월 승객 287명과 승무원 6명을 태운 뮌헨발 함부르크행 독일 ICE 고속열차가 종착역을 130㎞ 남겨둔 니더작센주 에세데 인근 선로에서 시속 200㎞ 속도로 달리던 중 탈선, 101명이 숨지고 88명이 중상을 입은 참사를 빚었다. 소음을 줄이기 위해 제작사인 지멘스사가 기존 바퀴에 고무흡진재를 삽입해 금속 외피를 씌운 게 사고 원인이었다. 도이체반은 사망자 유족과 피해자에게 총 30억 달러의 배상금을 물었고, 독일 고속철도는 프랑스 고속철 테제베 등과의 국제시장 경쟁에서 치명타를 입었다.

범인은 베를린 시내 윌머스도르프(Wilmersdorf) 인근 선로와 도시 간 고속철 바그데부르크 선로를 파손했으나 철도 당국이 비상 점검 과정에서 사전에 확인해 사고를 모면했다. 독일 북부 앙클람(Anklam) 선로에 감행한 세 번째 사보타주 때는 북행 화물열차가 탈선했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같은 선로를 달릴 예정이던 여객 열차의 운행이 다른 이유로 30분 지연 출발하지 않았다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도 있었던 사고였다.

돈을 챙기려다 잠복한 경찰에 체포된 40대 남성 클라우스페터 사보타(Klaus-Peter Sabotta)는 사업으로 진 빚에 허덕이던 중 6월 열차 사고를 보고 범행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2000년 2월 4일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쟁의 노동자에 의한 공장 설비 기계 파괴 및 생산방해 행위를 가리키는 사보타주는, 범인의 이름과 무관하며, 불어로 나막신(Sabot)을 신고 시끄럽게 걷다(saboter)의 명사형이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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