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온라인 가상공간인 메타버스에서 아동ㆍ청소년 성범죄가 고개를 들고 있다. 실제 이용자가 아닌 가상 자아인 아바타를 상대로 한 성희롱ㆍ성추행ㆍ스토킹 등 신종 범죄가 발생하는 게 메타버스의 특징이다. 아바타가 매개가 되므로 상대에 대한 경계심도 약해지고 피해를 입어도 실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 메타버스는 청소년들의 놀이터다. 대표적인 메타버스 서비스인 제페토는 이용자 70% 이상이 7~18세, 로블록스 이용자는 절반이 7~12세다. 청소년 보호단체들에 따르면 아바타 간 성범죄는 흔하다. 아바타로 중·고생 사이에서 유행하는 역할극 놀이(일명 왕놀이)를 하면서 속옷을 벗게 하거나 이를 거절하면 아바타가 등장할 때마다 음란 메시지를 보내는 등 집요한 스토킹이 뒤따르기도 한다. 아바타에게 유사 성행위 자세를 취하게 하거나 심한 경우 난교파티에 가까운 행위도 목격된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일부 청소년들은 아바타가 실제의 자기가 아니라고 자위하며 성적 요구를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고 말한다.
□ 메타버스 안에서 호의를 베풀며 친분을 쌓은 뒤 이를 악용해 성 착취물 촬영을 강요하거나 사진과 영상을 유통하는 등의 행위는 형법ㆍ전기통신사업법 등 기존 법으로 처벌이 가능하다. 문제는 아바타 간 성범죄다. 이용자들은 아바타에 대한 강한 일체감ㆍ몰입감을 보인다. 아바타가 메타버스에서 성범죄 피해를 입으면 이용자의 정서도 타격을 받지만 우리 법은 사람과 법인만을 처벌한다는 점에서 아바타가 저지른 범죄를 직접 처벌할 수 없다. 아바타 범죄 처벌 부재를 단순히 성범죄 처벌의 사각지대 문제로만 볼 수 없다는 견해도 많다. 넓게는 가상 자아에 인격을 부여하는 것이 옳으냐라는 법 철학 논쟁으로 치환된다.
□ 지난달 국회에서 메타버스를 매개로 한 아동ㆍ청소년 성범죄 문제 토론회가 열렸으나 아바타 성범죄 문제에 대해선 뚜렷한 해법이 도출되지 않았다. 부모세대와 자녀세대 사이에 메타버스에 대한 이해도와 접근도가 크게 차이 나는 것도 특징이다. 아바타 성범죄가 발생해도 부모세대가 이해할 수 없고 문제로 인식해도 이를 해결할 절차도 부재하다. 정확한 실태 파악부터 선행돼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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