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 지났지만 22조 원 예산이 투입된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은 여전히 ‘헛돈’ 논란의 대명사다. “단군 이래 최대 치수사업” “최악의 환경파괴” 등 극단의 평가 속에 국민은 아직도 명확한 효과와 부작용 사이에서 고개를 갸웃거린다. 앞선 대선 과정에서 한반도 대운하라는 이명박 후보의 무리한 공약이 없었다면 지금의 4대강 논란도 없었을 것이다.
곧 임기를 마칠 문재인 정부의 공약 후유증은 아직 본격 개봉 전이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내걸었던 최저임금 1만 원, 에너지전환(탈원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공약은 임기 중 꾸준히 추진됐다.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취지가 좋다고 꼭 결과가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건 이미 임기 중 어느 정도 확인한 바다. 상대 후보에 지지율이 크게 앞서 조급할 게 적었던 두 사람의 공약도 훗날 이 정도 평가를 받는다.
올해 대선이 초접전 양상을 띠면서 이재명, 윤석열 후보는 어느 때보다 선심성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연일 “내가 되면 덜 걷고 더 주겠다”는 식의 요술방망이를 휘두르는 것 같다.
두 후보는 약속이나 한 듯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의 기존 노선은 더 연장하고 E, F 노선까지 신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수도권 집중 심화라는 국가운영 철학 부재는 물론, 막대한 재원 마련의 불확실성, 빨라야 2030년대 시작이라는 한계까지 판박이여서 벌써부터 의구심을 사고 있다.
이른바 ‘소확행’(이재명), ‘심쿵’(윤석열) 공약 시리즈도 경쟁적이다. 이 후보의 미니공약이 인기를 끄니 윤 후보 진영이 주저 없이 따라나섰다. 덕분에 다음 정부에서 입대할 청년들은 대통령이 누구든 월급 200만 원(병사 월급 200만 원 공약)을 보장받았다. 여기에 추가로 든다는 예산 5조 원을 누구에게서 빼앗을지에는 누구도 설명이 없다.
절박한 후보들은 검증된 공수표까지 다시 꺼냈다. 이재명, 윤석열 후보의 ‘반값 아파트’ 공약은 1992년 대선부터 반복됐다. 지하철, 고속도로 등의 지하화 공약도 1995년 지방선거부터 등장했다. 만년 공약은 현실성이 없다는 의미지만 아랑곳 않는다. 대체로 이들은 공약 실현에 정확히 얼마가 드는지, 어떻게 재원을 마련할지, 그 공약을 위해 대신 뭘 포기해야 하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선거야말로 이익을 챙길 기회라는 학습효과가 쌓이면서 유권자도 갈수록 영악해진다. 심상정 후보는 7일 “국민연금 보험료를 올리자”는 연금개혁 공약을 발표했다. “동일한 연금제도로, 더 내든 덜 받든 나중에 받든 과감하게 개혁해야 한다”는 안철수 후보의 주장을 구체화한 것이지만, 둘 다 인기가 없다. 뭐든 양보하자는 공약은 좀체 표가 안 된다.
시대정신처럼 떠오른 ‘공정’의 가치 이면에는 ‘나만 손해 보는 건 곤란하다’는 심리도 깔려 있다. 고령화로 특정 세대(노인층)가 절대다수를 차지할수록, 성장 둔화로 나눌 파이가 줄어들수록 표심은 자기 이익에 더욱 예민해질 것이다.
1%포인트 차이로 당락이 갈릴 때, “정년은 75세까지 연장” “연금은 국가가 전액 보장” “전국민에 주택 지급” 같은 ‘이기고 보자’식 공약은 명분을 얻는다. 앞으로도 선거가 박빙일수록, 나라의 근간을 흔들 공약이 쏟아질 게 뻔하다. 초박빙인 이번 대선이 그래서 더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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