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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과 베토벤의 인연

입력
2022.02.23 04: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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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20여 년간 공연 기획과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해 온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이 클래식 음악 무대 옆에서의 경험과 무대 밑에서 느꼈던 감정을 독자 여러분에게 친구처럼 편안하게 전합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로맹 롤랑(왼쪽)과 그가 베토벤(오른쪽)을 소재로 쓴 저서 '베토벤의 생애' 표지(가운데). 문예출판사 등 제공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로맹 롤랑(왼쪽)과 그가 베토벤(오른쪽)을 소재로 쓴 저서 '베토벤의 생애' 표지(가운데). 문예출판사 등 제공

누가 클래식 음악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같이 들으면 좋을 음반을 함께 얘기한다. 반대로 음반 추천을 부탁하면 같이 읽어볼 책을 권한다. 음악은 분명 듣는 것이지만 작곡가와 작품, 연주자와 앨범에 대한 정보는 어떤 형태로든 '읽기'를 통해 얻는다. 요즘처럼 음악을 음원으로만 듣다 보면 앨범 한 장을 통째로 감상할 때에 비해 인식하는 정보가 파편적일 수 있다. 이럴 때 음악 도서는 각자의 감상 지도를 완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음악 도서는 작곡가의 생애를 다룬 책부터 지휘자·연주자에 대한 책 혹은 그들이 직접 쓴 책, 명반 소개집, 음악사 서적, 작품 해석집 등 그 종류가 많다. 미술은 창작자의 작품을 바로 감상할 수 있지만 음악은 창작자(작곡가)가 있고, 그가 만든 작품이 있고, 이를 훌륭하게 실연해줄 연주자도 필요하다. 한마디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유통 단계가 꽤 많은 편이다. 같은 음악애호가라고 해도 선호도에 따라 레코드 마니아, 콘서트 고어, 주법 연구에 집중하는 실연자 등 음악에 접근하는 형태가 다양하다.

이런 감상법도 있다. 로맹 롤랑, 줄리언 반스, 올리버 색스, 무라카미 하루키, 위화 등 작가들이 쓴 음악 책 읽기다. 그들이 바라본 관점도 궁금하지만 각자가 빠져든 음악에 대한 섬세한 감정 표현, 묘사력, 전달력, 필력을 맛보는 것만으로도 근사한 경험이 된다.

롤랑은 자신을 대하소설의 선구로 만든 '장 크리스토프'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천재 음악가 장 크리스토프 이야기의 출발점에는 롤랑의 영웅 3부작 중 하나인 '베토벤의 생애'가 있다. 이는 베토벤 도서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고전으로, 상처 입은 영혼이었지만 자신의 불행으로 환희를 만들어내고 결국 수많은 사람들을 품고 위로한 베토벤을 소개한다.

반스는 맨부커상 수상 이후 쇼스타코비치의 이야기를 다룬 '시대의 소음'을 썼다. 반스의 소설 중 최고로 꼽히는 이 책은 세계대전과 스탈린 치하에서 살았던 쇼스타코비치의 내밀하고도 깊이 있는 갈등을 밀도 있게 그려낸 글이다. 권력 앞에서 매일 죽음을 생각하며 용기와 두려움 사이에서 살아내고 작품을 쓴 세밀하고도 아픈 이 소설은, 뛰어난 문학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동시에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를 이해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맨부커상을 수상한 줄리언 반스(왼쪽)가 쇼스타코비치(오른쪽)의 이야기를 다룬 책 '시대의 소음' 표지. 다산책방 등 제공

맨부커상을 수상한 줄리언 반스(왼쪽)가 쇼스타코비치(오른쪽)의 이야기를 다룬 책 '시대의 소음' 표지. 다산책방 등 제공

음악은 작곡가, 연주자, 평론가, 애호가, 관계자들만이 누리는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때가 있다. 신경과 전문의이자 베스트셀러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등을 쓴 색스의 '뮤지코필리아'가 그걸 말해준다.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근긴장이상증으로 오른손을 사용하지 못했던 피아니스트 레온 플라이셔의 재기 일화를 비롯해 육체와 정신이 괴로운 인간에게 음악은 어떤 힘을 갖고 있는지, 뇌와 음악에 관한 여러 임상과 작가의 견해를 읽다 보면 페이지가 금세 넘어간다. 질병과 음악 사이의 관계를 다뤄낸 내용도 근사하지만, 우리의 연약한 신체와 감각을 따뜻하게 보듬은 작가의 시선이 좋다.

소문난 음악애호가 하루키의 '오자와 세이지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는 350페이지짜리 대화집이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3번과 말러에 대해 집중적으로 나눈 이야기, 세계적인 지휘자 세이지 오자와를 꼼꼼하게 인터뷰한 부분도 재밌다. 작가와 음악가의 입장에서 글과 음악, 활자와 음표라는 문명의 기호를 비교하며 나눈 대화도 흥미롭다. 개인적으로 하루키의 소설보다 산문을 더 선호하는데, 작가의 음악적 취향이 좀 더 드러나 공감대가 크다.

현대 중국 문학계를 이끌어가는 거장 중 한 사람인 위화의 산문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은 곱씹어 읽어볼 만하다. 1975년 문화대혁명 후반기를 겪었던 10대 시절, 클래식 음악을 알아가게 된 청소년기 추억 소환부터, 그만의 솔직하고 엉뚱한 상상력으로 웃음과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음악이 내 글쓰기에 미친 영향’이라는 주제 글은 읽는 내내 입꼬리가 내려가지 않는다. 브람스와 리스트, 바그너, 쇼스타코비치, 차이콥스키, 마태 수난곡에 대해 쓴 글은 꽤 진지하다. 힘 있게 풀어낸 그만의 서술은 글 읽는 사람의 음악 사랑하는 마음도 함께 키운다.

오선지 위에 음표가 있어야만 악보일까. 작가들의 활자, 문장 사이사이에도 음악이 가득하다. 가끔은 귀를 쉬게 해줘야 음악이 더 잘 들린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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