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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함락 초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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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함락 초읽기

입력
2022.02.25 19:40
수정
2022.02.25 23:57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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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군, 키예프 방어막 뚫고 시가전
美·나토 군사지원 못 받은 우크라 고전
피란민 10만명, 사상자 파악도 어려워
젤렌스키, 협상 제안…푸틴, 비무장 요구

25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러시아군 공격으로 파괴된 아파트를 보며 한 주민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키예프=AP 연합뉴스

25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러시아군 공격으로 파괴된 아파트를 보며 한 주민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키예프=A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함락이 임박했다. 개전(開戰) 9시간 만에 키예프 턱밑까지 들이닥친 러시아군은 침공 이틀째인 25일(현지시간) 방어막을 뚫고 들어가 곳곳에서 시가전을 벌였다. 미국과 서방국가들이 직접적인 군사 개입에 선을 그은 터라, 우크라이나는 고립무원 상태에서 홀로 러시아 대군과 싸우고 있다. 다급한 우크라이나는 휴전 협상을 제안하며 러시아가 주장하는 ‘중립국화’ 논의까지 언급했으나, 되레 러시아는 선결 조건으로 ‘비무장화’를 내걸었다. 사실상 항복 요구다. 우크라이나의 운명이 바람 앞 촛불처럼 위태롭다.

미국 CNN방송과 영국 BBC방송, 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이날 러시아군은 키예프를 에워싸고 공중습격과 지상공격을 동시에 퍼부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주민들은 또다시 폭발음과 경보음으로 하루를 맞이했다. 러시아는 주요시설을 겨냥해 미사일을 발사했고, 우크라이나는 요격으로 맞섰다. 공중에서 폭발한 미사일 잔해가 아파트에 떨어져 건물이 부서지고 화재가 발생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을 막기 위해 키예프 북쪽으로 50㎞ 떨어진 테테리프강 다리를 폭파하고 도시 외곽 4개 전선에 진지를 구축했으나 오래 버티지 못했다. 러시아군은 막강한 화력을 앞세워 키예프 북부 오볼론스키 구역까지 진출했다. 양측 간 교전도 벌어졌다. 오볼론스키는 키예프 중심부에 위치한 의회와 불과 9㎞ 거리다. 정부청사 인근에서 총성이 들렸다는 전언도 잇따랐다. 러시아군은 헬기 200대 이상을 동원해 키예프 외곽에 위치한 호스토멜 군용공항을 재점령하고, 곧바로 공수부대도 상륙시켰다. 키예프 공격을 위한 전략적 거점이 마련됐다는 의미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러시아 탱크가 밤사이 진격해 올 것으로 보고, 서방국가에서 받은 대전차 미사일을 대기시켰다. 우크라이나 내무장관은 “25일 밤이 이번 전쟁에 중대 고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영국 가디언도 “러시아가 키예프를 점령할지 항복을 받아낼지는 불확실하나, 미사일과 헬기를 동원한 공습과 기갑부대의 지상공격이 결합되면서 키예프는 더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고 전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틀째인 25일 우크라이나 국가방위군이 수도 키예프 중심부에서 러전투 태세를 갖추고 있다. 키예프=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틀째인 25일 우크라이나 국가방위군이 수도 키예프 중심부에서 러전투 태세를 갖추고 있다. 키예프=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와 가까운 동부, 북부, 남부 도시들도 차례로 함락당했다. 이날 하루에만 북부 체르노빌 원전, 동부 수미, 북서부 크로토프가 러시아군 수중에 들어갔고, 남동부 도시 자포리자도 로켓 공격을 받았다. 뱀섬이라고도 불리는 최남단 지미니섬을 지키던 국경수비대는 전원 목숨을 잃었다.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진 서부 리비프에도 공습 경보가 수차례 울렸다. 사실상 우크라이나 전역이 포성과 화염으로 뒤덮인 셈이다. 이미 침공 첫날에만 우크라이나 측에서 137명이 숨지고 316명이 다쳤다. 교전이 격화한 둘째 날은 사상자 규모조차 파악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전황이 급박해지자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국민들에게 “화염병을 던져서라도 적을 무력화시켜 달라”고 호소했다. 또 인적ㆍ물적자원을 전시체제로 전환하는 국가총동원령을 내리고, 징집 대상자와 예비군을 모두 소집했다. 당초 18~60세 남성에 한정됐던 소집 대상도 전체 연령대, 모든 시민으로 확대했다. 군사령관은 “여권이나 주민등록번호만 있으면 된다”며 항전에 나서 달라고 촉구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과 통화하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동유럽 회원국들의 군사 지원도 요청했다. 앞선 담화에서는 “우리는 혼자 남겨져 나라를 방어하고 있다. 누가 우리와 함께 싸울 준비가 돼 있나. 아직 보이지 않는다”며 병력 투입을 거부한 서방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키예프가 넘어갈 위기에 내몰리자 결국 젤렌스키 대통령은 한 발 물러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해 협상 테이블에 앉자”고 제안하며 “러시아가 요구해 온 우크라이나의 중립국 지위도 논의할 수 있다”고 했다. 러시아 측은 “벨라루스 민스크로 대표단을 보낼 준비가 돼 있다”고 화답했으나 “무기를 먼저 내려놓으라”는 으름장도 놓으면서 대표단의 진위를 의심케 했다.

키예프는 공황 상태다. 이미 많은 시민들이 포화를 피해 우크라이나를 탈출했다. 피란 차량으로 국경 도로는 마비되다시피 했다. 유엔난민기구는 전날 하루 만에 폴란드나 몰도바, 루마니아 등 국외로 빠져나간 우크라이나 피란민 숫자가 약 1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했다. 체코와 폴란드를 비롯한 이웃국가들과 미국 등은 난민 지원을 약속했다. 미처 피란길에 오르지 못한 시민들은 지하 방공호와 지하철역에 숨어 온종일 공포에 떨어야 했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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