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수출통제 강화·스위프트 배제 동참"
'비전략 물자' 세부 방안 없어 美 FDPR 배제
자체 목록 마련하면 러 반발 거세질 가능성
정부가 28일 러시아를 상대로 마침내 ‘경제 제재’ 조치를 발표했다. 국제사회의 대러 압박에 동참을 선언(24일)한 지 나흘 만에 대강의 알맹이를 채운 것이다. 그러나 “제재가 너무 늦었다”는 ‘실기(失期)’ 논란으로 정부의 선택지가 크게 줄었다는 비판도 무성하다. 무엇보다 ‘독자 제재’를 둘러싼 딜레마 해소가 당면 과제다.
외교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무력 침공을 규탄하고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노력에 적극 동참하기로 했다”며 경제 제재 방안을 공개했다. 우선 기존의 수출통제 허가 심사를 강화해 대러 ‘전략물자 수출’을 사실상 차단하기로 했다. 원자력공급국그룹(NSG) 등 ‘4대 국제수출통제체제’에서 정한 전략물자 품목이 기준이다. 러시아를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ㆍ스위프트)에서 배제하는 조치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앞서 미국 등 서방 6개국은 26일(현지시간) 러시아 은행들을 스위프트 결제망에서 제외하는 추가 제재를 단행했다.
‘비전략물자’ 역시 미국이 자체적으로 정한 57개 수출통제 품목을 놓고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조치 가능한 부분을 확정할 방침이다. 국제 에너지 시장 안정화를 위해 전략 비축유를 추가 방출하고, 우크라이나에 인도적 지원을 늘리는 방안도 병행 추진한다.
美와 협의 앞두고 서둘러 발표
이날 발표 내용을 보면, 정부가 서두른 흔적이 엿보인다. 단적으로 최대 쟁점인 비전략물자 수출통제의 경우 품목을 확정하지 못한 채 계획부터 공개됐다. 제재 동참만 선언하고 정작 제대로 된 압박 대열에는 합류하지 못했다는 우려를 감안한 조치로 풀이된다.
한미가 이번 주 수출통제 관련 협의를 진행하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이 러시아의 침공 직후 발표한 ‘역외통제(FDPRㆍ해외직접제품규칙)’ 조치가 관건이다. 면제 대상국에서 한국은 빠져 있는데, 정부가 아직 세부 수출통제 목록을 정하지 못한 탓이 크다. FDPR는 미국산 기술이 사용된 다른 나라 제품 등에 대해서도 러시아 수출 전 미국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조치다. 유럽연합(EU)과 일본 등 32개국은 이미 예외를 인정받았다. 미국과의 만남에 앞서 수출통제 의지를 강조하기 위해 발표를 앞당겼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타이밍 놓쳐 '독자 제재' 논란 가능성도
하지만 실기 비판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외교부는 24일 러시아의 침공 직전에야 수출통제 등 제재 동참 입장을 밝혔다. 정부 당국자는 “상황이 시시각각 변해 최대한 신중하게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으나, 결과적으로 서방의 조치를 마지못해 따라가는 모양새가 됐다.
급선무는 우리도 FDPR 면제를 받아 국내 기업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미국을 만족시킬 만한 대러 수출통제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이 경우 정부가 극구 손사래쳤던 독자 제재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는 게 문제다. 자칫 한러관계도 심각하게 틀어질 수 있다. 실제 안드레이 쿨릭 주한러시아대사는 세부 내용 없는 제재 발표에도 즉각 “깊은 유감”을 표하며 “한러 양자관계가 발전하는 추세가 바뀔 것”이라고 압박했다.
정부는 부당한 침공을 질타하는 국제여론이 압도적인 만큼, 당분간 러시아를 의식하기보다 제재 동참에 무게를 둘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 소식통은 “유엔헌장을 비롯한 국제법 위반이 명백해 적극적 대응에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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