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장의 결혼식
국토방위군 소속 연인들....
비장하고도 아름다운 결혼식
포성과 화염도 사랑은 멈출 수 없고, 전장 속에서도 삶은 이어진다. 6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 등에 따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1일째인 이날,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 전선에서 한 커플이 부부의 연을 맺었다. 주인공은 우크라이나 의용군인 국토방위군(TDF) 112여단 소속 발레리 필리모노우와 레샤 필리모노바.
정보기술(IT) 업체를 운영하는 등 회사원이었던 두 사람의 평범한 일상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려는 야욕을 드러내면서 산산조각 났다. 총 한 번 들어본 적 없었지만, 지난달 24일 러시아가 고국 땅을 짓밟자 나라를 지키기 위해 TDF에 합류했다. 영국 매체 더선은 두 사람이 20여 년간 교제해왔다고 전했다. 생과 사를 오가는 전시 상황에서 오랜 연인이 마침내 가족이 될 결심을 했다는 얘기다. 두 사람은 입대 이후 각각 나라를 지키느라 열흘 가까이 서로의 모습을 보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 정교회 방식으로 진행된 이날 결혼식은 여느 행사와 다르지 않았다. 전통 악기 ‘리라’로 연주하는 우크라이나 민속 음악이 울려 퍼졌고 흩날리는 꽃잎 아래 신랑 신부가 하객들의 축하를 받으며 입장했다.
그러나 사선의 결혼식에는 비장함이 더해졌다. 이날 신부 레샤는 웨딩드레스나 우크라이나 전통 의상 대신 군복을 입었다. 신랑 발레리 역시 군복 차림에 소총을 들었다. 두 사람의 팔에는 TDF를 의미하는 노란 완장이 달려 있었다. 군종 신부의 주례사가 끝나자 한 동료 방위군이 신부의 하얀 면사포 위로 철모를 들어올렸다. 원래대로라면 정교회 결혼 절차에 따라 왕관이 놓였을 자리다. 전우들은 한 손에는 소총이나 수류탄을, 또 다른 손에는 하얀 장미꽃을 든 채 세레나데를 불렀다. 커플이 입을 맞추는 순간 이들은 외쳤다. “우크라이나에 영광을! 적들에겐 죽음을!”
방탄 조끼를 입은 채 결혼식에 참석한 비탈리 클리치코 키이우 시장은 “이들은 며칠 전까지만 해도 무기를 들 생각이 없는 ‘보통 사람들’이었다”며 “(전쟁 속에서도) 삶은 계속되고 사람들은 살아간다”고 말했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을 전장에서 맞은 신부는 활짝 웃는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무조건적인 행복을 말하긴 어렵지만, 확실히 희망이 있다고 느낀다. 우리가 살아있어 이날이 시작돼 기쁘고, 남편이 살아서 나와 함께 있어서 기쁘다. 적을 밀어내고 우리 땅을 되찾아 승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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