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대 대통령을 뽑는 날이다. 이미 사전투표율이 역대 최대인 36.93%를 기록했다. 어설프게 결과를 전망하느니 차분히 지난 대선 기간을 돌아보는 게 나을 것 같다. 대장동게이트 같은 네거티브 공세에 함몰되고 정책과 비전이 실종해 최악의 대선이라는 지적은 외신까지 가세할 정도로 셀 수 없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동트기 직전이 가장 어두운 법. 이번 대선이 과거를 딛고 넘어가는 마지막 깔딱고개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기대일까.
대선은 과거를 심판하는 회고적 투표와 집권 비전을 평가하는 전망적 투표라는 두 가지 성격을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의미 있는 성찰과 반성이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 혁명으로 태동했음에도 대선 기간 내내 정권교체론 우위의 여론 지형이 유지됐다. 진영논리에 기반한 배제의 정치, 입법독주와 내로남불 말고는 달리 원인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물론 극단적 진영정치가 기승을 부린 데는 대통령이 탄핵당해도 책임지거나 쇄신하지 않고 여당의 발목만 잡은 야당의 책임도 크다. 다행히 이재명 후보가 조국 사태, 위성 정당, 재보궐 무공천 번복, 부동산 문제에 대해 사과하면서 먼저 변화의 물꼬를 텄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진영정치는 득보다 실이 크다는 교훈을 새길 필요가 있다.
이재명ㆍ김동연, 윤석열ㆍ안철수 간 후보 단일화가 성사되면서 여야 공히 통합정부가 핵심 의제로 부상한 것도 성과다. 선거 막판 전광석화처럼 이뤄진 후보 단일화는 양당 정치의 높은 벽을 재확인시켜줬다. 단일화는 자리 나눠먹기를 위한 야합의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이번은 조금 다르다. 정치개혁이나 국민통합 없이는 위기를 돌파하기 어렵다는 절박함이 배어 있다. 대통령 탄핵 사태를 겪고서도 ‘어떻게 권력구조를 바꿀까’보다는 ‘누구를 뽑을까’에 고민이 머물렀던 19대 대선에 비하면 진전을 이뤘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국민이 선거의 객체가 아니라 능동적 주역으로 선거판을 이끌었던 것도 인상적이었다. ‘국민이 키운 윤석열’이라는 선거 구호부터가 그랬다. 국정농단 때처럼 정치가 국민 위에 있다는 기득권적 인식으로는 주권자의 선택을 받을 수 없다는 각성을 보여주려는 듯했다. “정치는 정치인들이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국민이 하는 것이다.” 윤ㆍ안 단일화 이후 이재명 후보가 내놓은 메시지도 맥락이 닿는다. 국민은 겉만 번지르르한 화장술이나 인위적 이합집산에 속지 않는다는 신뢰와 존경의 표시다.
그럼에도 이번 대선을 두고 우려와 걱정이 많은 게 사실이다. 여당 후보가 되면 문재인 정부보다 더 폭주하고, 야당 후보가 되면 극단의 여소야대 상황에서 식물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다는 우울한 전망은 선거 막판까지도 우리를 망설이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선거는 최선을 고르는 게 아니라 차악으로 최악을 물리치는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다른 건 다 덮어 두더라도 세 가지만은 꼭 들여다볼 참이다. 특정 진영의 대통령이 아닌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누가 더 적합한가, 통합정부 구성으로 대한민국을 미래로 이끌 지도자는 누구인가, 정권을 잡아도 국민 앞에 겸손할 사람은 누구인가로 말이다. 어렵사리 응축된 시대정신만큼은 이번 대선의 유산으로 남기자는 의미에서다. 무엇보다 실패하지 않는 대통령을 보고 싶어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