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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여성화 회사가 군화 제작… ‘전시경제’로 돌아선 우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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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여성화 회사가 군화 제작… ‘전시경제’로 돌아선 우크라

입력
2022.03.14 18:45
수정
2022.03.14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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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개발회사, 대전차 장애물 생산
광고업체가 텔레그램 통해 '심리전'도

14일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현지군과 소방관들이 폭탄 테러로 화재가 발생한 건물 진화에 나서고 있다. 키이우=AP 연합뉴스

14일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현지군과 소방관들이 폭탄 테러로 화재가 발생한 건물 진화에 나서고 있다. 키이우=AP 연합뉴스

1957년 우크라이나에서 문을 연 ‘카초로우스카’는 이탈리아 명품 가죽으로 만든 고급 여성화 브랜드다. ‘베스트셀러’인 빨간색 가죽 펌프스와 베이지색 로퍼를 비롯, 각종 신발들이 우크라이나 여성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면서 현지 대표 업체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 회사는 최근 구두 제작을 중단하고 군화 제조에 나섰다. 당초 올 봄ㆍ여름 컬렉션에 쓰려던 올리브색 고급 가죽은 모두 군화 700켤레로 다시 태어났다. 알리나 카초로우스카 회사 최고경영자(CEO)는 “우리가 만들던 신발과 매우 다르지만 군대와 국가를 지원하기 위해 뭔가 시작해야 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경제가 전시(戰時) 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러시아가 땅을 짓밟은 지 3주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산업계는 ‘본업’을 포기하고 군수 물자 생산에 뛰어들었다. “끝까지 맞서자”는 정부의 호소에 각 업계가 일사불란하게 나서면서 ‘국가 총력전’을 방불케 한다. 영토는 초토화되지만 산업의 젖줄은 버티면서 전선을 지탱하고 있다는 얘기다.

13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우크라이나 민간 기업들이 러시아군 위협에도 공장과 사무실 문을 닫지 않고 정부군을 지원한다고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부동산 개발업체 코발스카 산업건설 그룹은 지난달 24일 러시아 침공이 시작되자 즉시 긴급 경영진 회의를 소집하고 13개 공장을 비롯, 수십 곳의 건설 현장에서 활동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대신 레미콘, 덤프트럭, 굴삭기 등 보유 중인 600여 대의 중장비를 우크라이나군에 넘겼다. 회사가 넘긴 덤프트럭 중 일부는 이동형 대공미사일 시스템으로 개조됐다.

회사는 2톤 이상의 트라이나이트로톨루엔(TNT) 폭약도 군에 제공했다. 전쟁이 아니었다면 화강암 채석장에서 암석을 폭파하는 데 쓰였을 터다. ‘체질’을 아예 바꾸기도 했다. 러시아군의 대전차 진격을 막는 거대한 철제 장애물 ‘헤지호그(hedgehogs)’를 생산 중이다. 세르게이 필리펜코 코발스카 대표는 “우리에겐 전쟁에서 승리하고 우크라이나를 재건하는 것, 단 한 가지 길밖에 없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최대 철강사 메틴베스트는 생산 역량 전부를 대전차 장애물 생산라인으로 전환했다. 지난 10일까지 헤지호그 3,500개와 콘크리트 블록 2,000개를 만들어 군에 제공했다. 우크라이나 각 병원에 의료용 산소를 공급하고, 유럽 전역에서 온 의약품과 식음료 등을 긴급 구호가 필요한 시민들에게 전달하는 것도 회사의 새 업무가 됐다.

3일 우크라이나 키이우 시내 한복판에 대전차 진격을 막는 철제 장애물인 헤지호그가 놓여있다. 키이우=EPA 연합뉴스

3일 우크라이나 키이우 시내 한복판에 대전차 진격을 막는 철제 장애물인 헤지호그가 놓여있다. 키이우=EPA 연합뉴스

자선단체들도 앞다퉈 동참하고 있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합병을 계기로 결성된 ‘컴백얼라이브’는 7억 흐리우냐(약 284억 원) 규모의 무인기와 적외선 야간투시경, 방탄복을 우크라이나군에 기증했다. 티모페이 밀로바노프 전 우크라이나 경제부 장관은 신문에 “스웨터를 만들던 공장이 무기를 만들고 있다. 우리는 전시경제로 돌입했다”고 말했다.

군수 지원뿐만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참상에 대해 뉴스를 제한하고 자국민의 눈과 귀를 틀어막는 러시아에 맞서 ‘심리전’에 나선 회사도 있다. 광고대행업체 ISD그룹은 60여 명의 팀을 구성, 전쟁 관련 영상과 사진을 러시아에 퍼뜨리고 있다. 현지에서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주요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막힌 탓에, 러시아 거주 친지와 텔레그램을 통해 퍼뜨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빅토르 슈쿠르바 ISD 창립자는 “러시아인에게 현실을 보여주고 싶다”며 “우리는 여전히 사각지대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총칼을 들고 국가를 지키는 건 아니지만, ‘특기’를 살려 후방에서 활약상을 펼치고 있다는 얘기다. 신문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저항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이 같은 산업계와 시민들의 적극적 지원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WSJ는 “미국과 유럽의 군사ㆍ재정 지원에 비하면 매우 적은 액수”라면서도 “기업과 민간의 지원은 정부의 전쟁 노력을 돕고 국제 원조를 강화하는 유인”이라고 설명했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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