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EU, 러시아 원유 금수 고려… 곡물 수출 제재는 어쩌나
알림

EU, 러시아 원유 금수 고려… 곡물 수출 제재는 어쩌나

입력
2022.03.22 17:19
수정
2022.03.22 20:19
17면
0 0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 만행에 제재 강화 고려
걸림돌은 식량, 러·우크라 모두 곡물 수출국
FAO "식량 가격 급등·공급 차질로 1300만명 굶주려"
"음식은 절대 무기로 사용돼선 안 돼" 주장도

10일 러시아 이르쿠츠크지역의 한 정유시설 증류탑 맨 윗 부분에 러시아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이르쿠츠크=로이터 연합뉴스

10일 러시아 이르쿠츠크지역의 한 정유시설 증류탑 맨 윗 부분에 러시아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이르쿠츠크=로이터 연합뉴스

유럽연합(EU) 내에서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하지 않는 경제제재에 찬성하는 국가들이 늘고 있다.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높은 의존도 때문에 그간 고민을 거듭했던 EU는 우크라이나에서의 러시아군이 폭주하자, 러시아산 원유 금수조치에 무게를 싣는 모습이다. 문제는 러시아의 또 다른 돈줄인 식량이다. 원유의 경우 중동이나 기타 지역에서 대체할 수 있다지만, 러시아산 밀 등 곡류는 빈곤 국가들에 주로 수출되고 있어 빗장을 걸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21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외무장관 회의에서 슬로베니아와 체코, 아일랜드, 슬로바키아 등이 러시아산 원유 금수 조치를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사이먼 코브니 아일랜드 외무장관은 회의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현재 우크라이나의 피해 상황을 보면 석유와 석탄 등 (러시아의) 에너지 부분을 제재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하긴 힘들다”고 말했다. 이반 코르초크 슬로바키아 외무장관도 “러시아로부터 에너지를 사오는 것은 러시아에 자금을 대는 것과 같다”며 금수조치를 촉구했다.

21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EU 외무·국방장관 회담이 진행되고 있다. 브뤼셀=AP 연합뉴스

21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EU 외무·국방장관 회담이 진행되고 있다. 브뤼셀=AP 연합뉴스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가 큰 독일도 금수조치 반대가 확고한 것은 아니라며 입장을 선회할 가능성을 내비쳤다고 WSJ은 전했다. 덴마크 등 일부 국가들은 EU 내 합의가 도출된다면 금수에 동참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초 러시아 원유 금수가 처음 언급됐을 때 폴란드 등 일부 국가만이 지지 의사를 밝힌 것에 비해 기류가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이제는 러시아 원유에 대한 금수 조치에 명확히 반대하고 있는 나라는 헝가리 정도다.

대(對)러시아 제재 확대의 걸림돌은 식량이다. 침략국 러시아는 물론 날벼락을 맞은 우크라이나 모두 주요 곡물 수출국이다. WSJ에 따르면 개전 이후 국제 밀 가격은 30% 이상 상승했다. 러시아산 작물 수출이 전면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전쟁터의 앞바다가 된 흑해에 화물선이 진입하려면 기존보다 훨씬 더 높은 보험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점이 원인으로 꼽힌다. 가격은 더 오를 전망이다. 밀농사를 위한 파종 시기가 머지 않았지만 전쟁터로 변한 우크라이나에서 제때 농사가 진행될 리 만무해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흑해 인근 러시아 크라노스다르지방 트빌리스카야의 한 밀 농장에서 수확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트빌리스카야=AP 연합뉴스

지난해 7월 흑해 인근 러시아 크라노스다르지방 트빌리스카야의 한 밀 농장에서 수확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트빌리스카야=AP 연합뉴스


러시아의 밀 수출길이 막힐 경우 전 세계에 더 큰 문제가 닥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흑해 곡물 관련 연구소인 소브이콘의 안드레이 시조프 이사는 “농산물 업체가 러시아에서 철수한다면 러시아는 자급자족이 가능하게 되지만 다른 국가들은 그렇지 못하다”고 말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식량 가격 급등과 공급 차질로 전 세계 최대 1,300만 명이 굶주림에 빠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러시아 곡물 수입 의존도가 높은 저소득 국가에 가장 큰 타격이 닥칠 것이라고도 설명했다.

세계 각국의 환경 및 농업 단체는 국제 곡물 거래 기업에 러시아 사업 철수를 잇따라 요구하고 있지만 이런 이유 탓에 실현 가능성은 낮다. 미국 기반 농산물 메이저 기업 카길은 이달 초 러시아 사업 규모를 축소하겠다면서도 빵과 유아용 분유, 아침 식사용 시리얼 등 식료품과 동물 사료 부문은 계속 영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음식은 기본적인 인권이며 절대 무기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였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10억 달러 규모가 넘는 사업을 운영 중인 살충제 및 종자 업체 신젠타 역시 잠재적 식량 부족 사태를 완화하기 위해 러시아 농부들에게 종자와 화학물질을 계속 공급하고 있다고 한 관계자는 WSJ에 말했다.


푸른 하늘 아래 우크라이나의 한 들판에 노랗게 익은 곡물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마치 청색과 황색으로 이뤄진 우크라이나 국기를 연상케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푸른 하늘 아래 우크라이나의 한 들판에 노랗게 익은 곡물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마치 청색과 황색으로 이뤄진 우크라이나 국기를 연상케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일단 EU는 당초 23일로 예정됐던 ‘지속가능한 농업’ 초안 발표를 미루기로 했다. 초안에는 농약 사용 감축 계획이 담길 예정이었으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세계 곡물 시장에 혼란이 예상되는 만큼 ‘지속가능한 농업’을 당장 논의하기는 어렵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김진욱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