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해머'라는 넷플릭스 시리즈가 있다. 미국 뉴욕 조직폭력배가 증인보호프로그램에 따라 노르웨이 릴레함메르에서 새 삶을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시즌3까지 만들어졌으나 널리 인기를 모은 드라마는 아니다. 넷플릭스가 노르웨이 방송사 NRK1과 공동 제작했다. 2012년 1월 NRK1에서 먼저 방송된 후 같은 해 2월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됐다.
‘릴리해머’는 넷플릭스가 최초로 선보인 오리지널 드라마다. 2013년 발표된 ‘하우스 오브 카드’ 시리즈의 빛이 강렬해 ‘최초’ 이미지가 가려졌다. 넷플릭스는 ‘릴리해머’ 에피소드 8편을 한꺼번에 소개했다. 넷플릭스의 상징과도 같은 ‘몰아보기(Binge Viewing)’의 원조인 셈이다. ‘릴리해머’라는 시작은 미약했다고 할 수 있으나 10년 뒤 넷플릭스는 글로벌 공룡 매체가 됐다. 전 세계 유료 계정수가 2억2,200만 개다. ‘릴리해머’ 공개 이후 매년 수조 원씩을 콘텐츠에 투자해 일군 성과다. 콘텐츠가 워낙 방대해 무얼 봐야 할지 고민하다 시간을 허비한다는 ‘넷플릭스 증후군’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넷플릭스는 2016년 한국 시장에 진출했다. 외국계 대형 마트처럼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점친 영상산업 관계자들이 있었다. 유료 TV에 거부감이 있는 한국 이용자들을 감안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그럼에도 넷플릭스가 한국에서도 강자로 곧 부상하리라는 전망이 강했다. 하지만 6년 만에 한국 영상산업을 쥐락펴락하리라 예견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최근 앱 분석업체 와이즈앱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이용자의 넷플릭스 결제액은 8,809억 원으로 추산된다. 올해는 1조 원에 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한다. 2020년 기준 KBS 매출이 1조3,522억 원이었다. MBC는 9,046억 원, SBS는 7,055억 원이었다. 넷플릭스가 웬만한 국내 지상파 방송사만큼 돈을 버는 시대가 됐다.
넷플릭스의 급성장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영향이 있기도 하다. 넷플릭스가 호황을 누릴 때 국내 극장 산업은 붕괴 직전까지 몰렸다. 2019년 1조9,140억 원이던 극장 매출은 지난해 5,845억 원으로 쪼그라들었다.
극장 매출이 줄면서 영화관람료의 3%를 징수하는 영화발전기금은 고갈됐다. 영화발전기금을 관리하는 영화진흥위원회는 올해 예산을 위해 공적 자금 800억 원을 차입했다. 차입금 이자만 1년에 10억 원이다. 극장이 정상화하지 않으면 내년에도 수백억 원을 차입해야 할 처지다. 지속 가능한 일은 아니다. 영화발전기금은 한국 영화 산업 육성에 쓰여왔다. 독립영화 제작 지원을 비롯해 상업영화 제작을 위한 펀드 등에 기금이 투입됐다. 영화발전기금 재원이 위태로워지면서 한국 영화 생태계는 근간까지 흔들리게 됐다.
넷플릭스는 지난 6년 동안 한국 영상 산업에 1조 원가량 투자한 점을 강조한다. 고용 효과 등 한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서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로 전 세계에서 막대한 이득을 취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 영상 산업 종사자들이 마냥 고마워할 일은 아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넷플릭스는 공공기금 조성 등 한국 영상 산업 발전을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1년에 1조 원가량 벌게 될 기업이라면 공익을 더 생각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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