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에너지 대금 루블 결제 요구 번복
EU·G7 반발 부딪혀 긴장 완화 조치로 해석돼
"푸틴이 받는 유로는 우크라이나 파괴에 투입"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자국산 천연가스 대금을 루블로만 결제하라는 방침을 뒤집고 유로화 결제를 계속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루블 결제 의무화에 반발하던 유럽연합(EU) 소속 국가들은 기존 계약대로 가스를 수입할 수 있게 됐지만, 에너지 거래로 우크라이나 침공의 '돈줄'이 되고 있다는 딜레마가 남는다.
이날 독일 정부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의 통화에서 “유럽의 다음 달 (가스 대금) 결제는 유로화로 계속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통화에서 "다음 달 1일부터 루블화로만 대금을 결제하는 법이 시행될 것이지만, 유로화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결제가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러시아는 국영 에너지기업 가스프롬 은행을 통해 판매 대금으로 받은 유로화를 루블화로 환전할 예정인데, 푸틴 대통령은 이 방식이 제재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조치를 두고 러시아의 긴장 완화 시도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3일 서방의 경제 제재에 대한 보복 조치로 제재 동참국 48개국에 대해 러시아산 가스 구매 대금을 루블화로만 받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대러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EU 등 서방이 이 요구를 거부하며 갈등을 빚었다. 특히 주요 7개국(G7) 에너지 장관들은 28일 화상회담을 열어 루블화 지급 요구는 "기존 계약에 대한 명백하고 일방적인 위반"이라며 만장일치로 거부했다. 심지어 독일은 가스 공급 중단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비상공급계획 조기 경보를 발령하고 산업계와 개별 가구에 가스 사용을 최대한 줄여 달라고 당부하는 등의 대비책도 마련 중이었다.
이번 조치로 당장의 에너지 대란은 피할 수 있을 전망이다. 다만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 연장은 러시아에 우크라이나 침공 자금을 대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미국은 이미 러시아산 석유와 천연가스 수입을 금지했고, 영국도 올해 말까지 단계적인 수입 금지를 시행하기로 했지만, 대러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EU는 아직까지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기준 EU는 천연가스 45%, 원유 25%를 러시아에서 수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레그 유스텐코 우크라이나 대통령 경제보좌관은 미국 뉴욕타임스에 "유럽은 전쟁이 시작된 뒤에도 계속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를 수입해 190억 달러(약 23조 원) 이상의 군자금을 댔다"며 "푸틴이 (에너지 수출 대금으로) 받는 유로는 우크라이나를 파괴하는 무기 구매에 이용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선 유로 결제를 허용한 이번 조치로 경제 제재의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에스와르 프라사드 코넬대 무역정책학 교수는 "유로 지불은 푸틴에 타격을 주기보단 돕게 된다"며 "러시아는 자국 통화가 약세인 상황에서 루블화를 지탱하기 위해 강하고 안정적인 통화인 유로화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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