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일 러시아군 완전 점령… 도시 80% 파괴
고립 주민 1만 명… 러시아군 '살생부' 공포 팽배
우크라군도 반격, 이지움 주변 마을 다수 탈환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에서 ‘대전투’가 본격 점화하면서 친(親)러시아 반군 점령지인 도네츠크ㆍ루한스크주(州)와 맞닿은 관문 도시 이지움이 ‘제2의 부차’가 될 거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러시아군이 수도 키이우 점령을 위해 키이우 최후 방어선이었던 부차를 무참히 파괴하고 민간인을 대거 학살했듯, 이지움에서도 똑같은 참극이 재현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미 이지움은 “마리우폴 미니어처”라 할 정도로 피해가 극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18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이지움은 한 달 넘게 이어진 항전에도 결국 이달 1일 러시아군에 함락됐다. 이곳이 동부 및 남부로 진격하는 길목에 위치한 탓에 전쟁 초기부터 집중 공격을 받았고, 현재까지 주거용 건물 80%가 파괴됐다. 주민들은 몇 주간 지하실에 숨어 전기와 난방, 수도, 음식 없이 버텼다. 거리 곳곳에는 시신도 널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움 시당국은 1,000명 이상 숨진 것으로 추산했다. 한 60대 주민은 “이른바 도네츠크인민공화국 군인을 자처하는 괴한들이 집에 쳐들어와 무기로 위협하면서 차량과 술 등을 닥치는 대로 약탈했다”며 “그들이 도둑질에 정신이 팔린 틈을 타 도망쳤고, 얼음장 같은 강물을 헤엄쳐 도시를 탈출했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이지움에는 아직 주민 1만~1만5,000명이 탈출하지 못한 채 갇힌 것으로 추정된다. 주민들과 함께 도시를 빠져 나온 발레리 마르첸코 이지움 시장은 “3월 10일 버스 60대를 동원해 주민을 대피시킨 게 마지막이었다”며 “이후 세 차례 인도주의 대피로 개설을 시도했으나 러시아군이 피란 버스에 총격을 가해 되돌아가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봉사자들이 개인 차량을 이용해 목숨 걸고 피란민을 수송했지만, 도시가 러시아군 수중에 넘어간 뒤로는 완전히 손발이 묶여 버렸다”며 비통해했다.
러시아군이 ‘살생부’를 준비했다는 소문도 파다하다. 돈바스 내전 참전 용사, 경찰, 사업가, 활동가, 군인 등이 최우선 제거 대상 목록에 올랐다는 목격담도 전해졌다. 잔혹한 학살이 또 벌어질 거라는 공포가 퍼지는 이유다. 마르첸코 시장은 “부차와 이지움은 매우 비슷한 상황”이라며 “남은 주민들이 어디로 끌려가 어떤 운명을 맞닥뜨릴지 알 수 없다”고 우려했다.
이지움은 이제 러시아군의 전략적 거점이자 병참 기지다. 키이우 외곽과 북부 체르니이히우에 주둔했던 병력과 군사장비들도 이지움으로 몰려오고 있다. 러시아 포병부대는 이지움을 점령한 뒤 돈바스 지역으로 48㎞가량 진군했다. 이지움에서 남쪽으로 51㎞ 거리엔 슬로비얀스크가 있다. 슬로비얀스크 역시 동북부와 동남부를 연결하는 요충지로, 서방 군사전문가들은 이곳이 향후 우크라이나 전쟁의 핵심 전장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이지움을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우크라이나군은 이지움을 남북으로 가르는 시베르스키도네츠강 남쪽에 진지를 구축하고 다리를 폭파시키며 러시아군의 남하를 막다가 결국 3주 만에 밀려났다. 그러나 최근 대대적인 반격에 나서 이지움 외곽 마을 여러 곳을 탈환했다. 우크라이나 국영통신 우크린포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이날 브리핑에서 “러시아군은 이지움을 거점 삼아 동부 지역에 맹공을 퍼부을 것”이라며 “그러나 우크라이나군은 이지움 인근에서 러시아군을 격퇴하고 여러 마을을 해방시켰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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