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여왕이라고 하는 오월의 싱그러움이 한창이다. 푸르름이 짙어지고 자연의 왕성한 생명력을 느끼는 시기이다. 초봄에 새싹들이 단단한 땅을 뚫고 올라온 고난에 대한 보상과도 같은 아름다움이라 하겠다. 아름다움 속에서 새싹들의 껍질이 깨지는 산고가 느껴져, 주역(周易)의 64괘중 세 번째로 등장하는 '수뢰둔괘(水雷屯卦)'를 떠올리게 된다.
'둔(屯)'은 새싹이 흙을 밀어올리며 뚫고 나오는 생명의 모습을 본뜬 것이다. 그 때문에 둔괘는 생명의 경이로움과 에너지를 의미함과 동시에, 새로운 시작과 탄생의 어려움을 상징하는 괘이기도 하다. 이러한 어려움을 '둔난(屯難)'이라고 표현한다. 아름다운 오월에 새로운 도전과 창조를 위해 또 다른 둔난을 겪는 이들이 있다. 바로 '기상청 사람들'이다.
5월 15일은 여름철 자연재난대책기간(5.15~10.15)이 시작되는 날이다. 매년 같은 기간 동안 여름철 방재기간을 보내지만, 여름은 매년 새로운 모습을 보인다. 똑같은 날씨가 없듯, 똑같은 여름이 없었다. 2020년 여름은 역대 최장기간의 장마가 나타났지만, 작년 여름에는 장마가 늦게 시작하다가 빨리 끝나 버렸다. 작년 여름에 9호 태풍 '루핏'은 중국 남동부 해안에 상륙했는데도 세력이 약해지지 않고, 만 하루 동안 육상에서 이동하다가 다시 해상으로 진출하여 북상하는 이례적인 경우였다. 심지어 14호 태풍 '찬투'는 대만부근 해상에서 상하이 근처까지 북상했다가, 위도 30도가 넘어서 거꾸로 남쪽으로 이동했다가, 다시 지그재그식으로 매우 느리게 남북으로 이동하며 정체하는 모습을 보였다. 만 이틀하고도 12시간이 지난 후에야 '찬투'는 정상적인 진로를 찾아갔다.
올여름에도 과거에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이 나타날 것이다. 과거를 복기(復棋)하면서 부족했던 점을 채우고, 무디어진 날을 세우고,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아르고스'처럼 위험 상황을 빨리 감지하기 위하여 한시도 눈을 감지 않는 자세로 임하고 있다. 매일 다른 일기도를 자연이 주는 시험지 삼아 온 정성을 다해 해석하고 풀어내는 수밖에 없다. 우리가 낸 오답은 국민의 피해로 돌아갈 수 있기에 여름의 시작은 늘 긴장과 두려움의 연속이다.
수뢰둔괘의 괘상은 비(水)가 천둥(雷) 위에 올려져 있는 형상이다. 주역에서 물은 험난함을 의미하고 천둥은 움직임이니, 어려움을 무릅쓰고 움직이려는 모양새이다. 마치 여름철 위험기상이 닥쳤을 때 이를 헤치고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상징하는 듯하다. 둔난을 극복하는 지혜 또한 주역에서 이르고 있다. 뜻을 바르게 두어 행하고 올바르면 이롭다 했으니, 다가오는 여름의 시작에서 그 의미를 다시금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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